스토너 STONER를 읽고
스토너 STONER를 읽고
존 윌리엄스

한 남자의 생애. 태어나서 순진하고 착한 아들로 성장했다가 아버지가 추천한 농업을 뒤로하고 문학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영문학도의 길을 걷다가 교수가 된다. 친구들과의 우정, 어설프지만 사랑했던 여자와의 결혼(비록 실패작이었지만), 아버지라 불러주는 귀여운 딸, 대화가 통하는 여인과의 열정적인 사랑 그리고 이별, 열정과 애정을 쏟았던 문학까지.
특별할 것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소박하고 평범하게 그렸지만 자신의 삶을 펼쳐나간 사람. 가정적이고 성공에 뜻이 없는 조용한 사람이지만 몸담고 있는 일과 학문에 대한 열정이 살아 있는 사람. 전 생애 걸쳐 이렇다 할 내세움도 없으면서 삶 모든 부분에서 떳떳이 살아간 사람. 꾸준히 성실하게 자신의 주어진 삶을 순응하며 살아간 사람. 조용히 인내하고 기다리며 참는 사람. 허황되지 않고 꿈만 쫒지 않으며 이상(학문)과 현실을 살아간 사람.
어쩌면 스토너는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다 한 사람이기에 작가는 영웅이라 표현하지 않았을까. 꼭 크나큰 성취로 업적을 남기지 않더라도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삶에서 영웅인 것처럼. 스토너 역시 우정도 사랑도 결혼도 아버지로서도 학문에 있어서도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았던 영혼아니었을까.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나한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느냐 따지지 않고, 무엇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 억울해 하지도 않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한테 손가락질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그런 모습이 처음엔 답답했다. 욕지거리라도, 손가락질이라도 해주지 어쩌면 저러고 있나 싶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천하의 나쁜 사람은 없다. 이해관계에 얽히고 각자 삶의 방식으로 인해 겪는 의견 차이로 속 시끄러운 일들일 뿐. 사람이 살다 보면 누구나 겪는 인간관계 모습이다. 스토너는 지극히 자신의 모습대로 살아간 것일 뿐이다.
삶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자신에게 했던 질문, ‘넌 무엇을 기대했나?’ 임종을 앞둔 사람이 자신에게 하는 질문은 나에게 형용할 수 없는 묵직함을 안겼다. 자신의 삶을 살아낸 사람이 할 수 있는 질문. 질문이 던진 묵직함을 안고 읽어간 역자의 글에서 조금이나마 감정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394p. 독한 삶이든, 화려한 삶이든, 스토너처럼 인내하는 수수한 삶이든 마지막에 남는 질문은 똑같다는 것.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의 삶이 애잔하지만 그를 섣불리 실패자로 낙인찍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질문 때문이다. 그는 삶을 관조하는 자였다.
‘삶을 관조하는 자’ 라는 표현에서 나의 감정이 명확해졌다. 역자의 글을 읽기 전에는 스토너에게 ‘당신의 삶은 틀렸어요, 나 같으면 그렇게 살지 않았을 거에요, 당신은 나에게 답답했어요, 왜 그렇게 살았어요?’라고 묻고 싶었다. 허나 가만히 나를 들여다봤을 때, 나의 삶도 그렇게 특출나게 대단하지 않음을 씁쓸하게 맞이하면서 스토너는 이미 나에게 대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라도 살 수 있을까.
“넌 무엇을 기대했나?”
나는 내 삶에 무엇을 기대하며 살고 있을까. 내 삶이 한 편의 글로 그려진다면 어떤 모습일까. 나의 출생과 성장, (청소년기, 청년기), 결혼 전과 후, 아이들과 나, 지금 현재,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모든 나날들에서 나는 어떤 삶으로 살아갈까.
38p. 그는 자신의 장래를 수많은 사건과 변화와 가능성의 흐름이라기보다 탐험가인 자신의 발길을 기다리는 땅으로 보았다. … 장래 그 자체가 변화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변화의 도구라고 보았다.
40p. 문법의 논리성이 느껴졌고, 그것이 스스로 퍼져나가 언어 전반에 스며들어서 인간의 생각을 지탱하게 된 과정을 알 것 같았다.
41p.그는 학생의 입장으로 강의를 들을 때 해방감과 성취감을 느꼈다. … 그 자신이 순식간에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던 그 날처럼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 자신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인식했다.
스토너가 사랑했던 학문, 직업에서 갖는 열정만큼이나 잘 살 수 있을까. 아니, 일과 목표, 역할에만 초점 맞춰지는 것을 넘어서서 생과 사를 넓게 보는 시야를 가질 수 있을까. 한 발자국 떨어져서 제 3자의 눈으로 내 삶을 보는 혜안을 바랄 수 있을까. 답이 없는 곳에 가 닿을 수 있는 질문 ‘나는 무엇을 기대했나?’는 삶의 전환전마다 나에게 되묻는 기준점이 되어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