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pin 2020. 6. 8. 12:22

 

잣 대

 

아침 등굣길.
아이 원피스에 눈길이 갔다. 몇 년째 작아지지 않는 원피스가 야속했다. 작년 옷 정리 하면서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남겨두자 했던 옷이 여태껏 맞다. 서운함과 불안의 눈빛으로 원피스를 바라보다 흠칫 놀라 눈길을 거두었다. 아이에게 들킬세라 미안해서와 조급하지 말자 했던 다짐이 떠올라서다.

첫째 아이는 체구가 작다. 올해 여덟살인데 평균치 6세 정도만 할까. 몸무게는 아직도 19.5 정도(6세 평균)이고 키는 다섯 살 남동생과 오 센티 남짓 겨우 차이가 날까 말까다. 남매가 예뻐 말을 붙이시는 어르신들이 연년생이냐, 묻기도 하고 딸 하나 아들 하나 이백 점 쌍둥이네 하시는 분도 있다. 한 번은 영유아 검진 뒤 의사의 추천으로 대학병원을 찾은 적도 있다. 성장 호르몬 검사를 받기 위해서다. 결과는 이상무. 호르몬 자체는 충분한데 보다 정확한 원인을 알려면 아이를 더 극한 스트레스 상황으로 노출시켜야 한다 길래 관두었다. 성장 호르몬에 문제 없다는데 아이를 괴롭게 하면서까지 성장에 목매고 싶지 않았다. 아무 이상 없으면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엄마 마음으로 조급증은 조금 생겼다. 음식에 집중한다거나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안달하거나. 도통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밥 먹는 양도 작다. 우유나 고기에 목매지 않았다가도 산책하다 노부부가 ‘우리 손녀가 여섯 살인데 더 큰 것 같다.’ 바람처럼 지나는 말에 압박감으로 고기를 먹이려는 나를 본다. 아직 어릴 때는 언젠가는 크겠지 여유를 부리다가도 주변에서 한마디씩 읊조리면 다시금 경기 일으키듯 경각심을 세우는 거다.

사실 더 세밀히 들어가보면 내 문제가 개입되어 있다. 엄마가 관리를 안 해줬나, 엄마가 잘 안 먹인 것 아닌가? 하고 주변에서 『판단』과 『평가』할 것만 같은 내 문제. 엄마 역할에 점수제가 있었다면 아마 나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안달 나 아이는 안중에도 없었을 거다. 예쁜 아이, 재능을 보이는 아이, 조기 교육에서부터 유행하는 육아관까지. 바람 같은 말에 쉬이 흔들리는 엄마 팔랑 귀가 문제다. 아이의 성장에 있어서 팔랑 귀 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팔랑 귀를 부추기는 다양한 매체에서부터 주변 엄마들의 ‘카더라’까지.

더해서 『평균치』라는 것이 참으로 요상타. 평균이라는 범주 안에 들지 않으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늦게 자라는 아이도 있고 빨리 자라는 아이도 있는데 각자의 개별성보다는 평균 안에 드느냐 들지 못하느냐가 잣대가 되어서는 순위를 메기는 꼴이니 말이다. 아이를 믿고 기다리자 하면서도 평균치를 밑돈다 하면 조급해진다. 엄마가 뭘 잘못했나 죄책감도 들고.

외부적인 잣대와 아이만의 성장을 분리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속담에서인가 『잡초를 잡아당긴다고 해서 빨리 자라지 않는다.』 라는 문장처럼.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하지 말고 나와 내 아이만 보고 관계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 내 아이의 상태를 인정하고 아이 본연의 개별성을 이해해야 한다. 내 아이만의 성장속도를 존중하고 지켜주는 것. 그거면 되지 않을까.

하트:)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