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osystem/꿈꾸는 맘

어떻게 죽을것인가

Musicpin 2020. 7. 13. 11:16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어떻게 죽을것인가

 

나에게도 반드시 그 날은 온다. 예고되면 좋겠지만 불현듯 예고 없이 세상과 이별의 순간이 올 거다. 그 날을 위할 것은 아니지만 회피할 것도 아니기에 아름다운 죽음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나의 외할머니는 돌아가시는 당일까지 키우는 토끼와 소들에게 여물을 주고 마당을 쓸었으며 자신이 입은 옷을 모두 깨끗이 빨아 널은 그 날 오후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 역시 내가 이룬 일상을 내 손으로 모두 정리한 뒤에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늙어서도 삶을 의미 있게 살도록 만든다는 것(213p.)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일상은 느긋하지만 여유롭게 흘러갈 거다. 눈을 뜨면 침구를 정돈하고 클래식 라디오를 틀은 후 아침을 먹고 신문을 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다. 오전엔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고 간혹 악기를 열어 연주하거나 미술 도구를 이용해 그림도 그릴거다. 늘그막에 배운 뜨개질로 설거지 하는 수세미도 짜 보며 ‘진정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할거다.

내가 살았던 삶은 언제나 도전이었다. 지역 합창단에 가입해 노래도 부르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아이들을 돕는 작은 봉사도 한다. 교회든 성당이든 찾아가 종교생활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인의 도움을 받아야 하긴 할 거다. 최대한 내 생활을 배려해주는 전문가들을 미리 알아두어 관계를 지속해나가야 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직접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우선순위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싶다(227p.).

만성 폐질환 때문에 늘 산소가 필요하지만 집에서 나의 공간에서 일상을 산다. 관절염으로 걸음을 잘 걷지 못하지만 평소처럼 정원을 정돈하고 물을 주고 잔디를 속아낸다. 물론 드물겠지만.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고 작게나마 텃밭을 일구어 자급자족한다. 살고 있는 집은 여주에 위치해 있고 남편과 함께 만들어 올린 집이다. 이 곳에서 딸과 아들을 정성 들여 키웠다. 몸의 관성을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알았고 둘째와 더불어 관성을 깨는 노력을 계속했다. 늙은 할미의 노력은 늘그막에도 계속 동력이 되어 줄 거다.

내 나이 아흔. 나의 묘비명은 <운을 만드는 집> 신기율의 책을 보고 힌트를 얻었다.

 

왔니?

고맙다.

사랑한다.

행복해라.

 

엄마ㆍ아빠가

 

화장을 선택할 거고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을 거다. 임종의 시간은 자식들과 함께하고 싶다. 성숙하지 못한 엄마에게 날아와 줘서 고맙다고 마지막 인사도 건네고 싶다. 덕분에 성장을 위해 고군분투했고 그 덕에 성장하는 과정이 아프지만 좋았노라고 고백할거다. 돌이켜보니 그 시절이 좋았다고. 엄마 아빠라고 불러줘서 고맙다고도 전할 거다. 우리의 연이 이번 생에 닿아 함께 할 수 있어서 그 모든 것이 좋았노라고 꼭 전해 줄 거다. 묘비석의 문구가 자식들이 간혹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하는 인사와 하고픈 말로 안부를 건네며 죽음과 삶을 연결해주는 공간이 되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언제나 네 편이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미우나 고우나 사랑하는 남편. 꽃다운 나이에 만나서 무지 싸웠다. 맞춰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이 있었기에 더욱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노라고 고백한다. 같은 시간 함께 저 세상 가면 좋겠지만 만약 시간차가 있어도 다른 할아버지는 못 만날 것 같다. 이미 익숙해진 서로의 살결이 그리워서다. 함께 한 호흡, 시간, 추억들 만으로도 충분했노라고, 덕분에 내가 더 성장할 수 있었고 열렬히 살수 있었다고 말해 줄 거다. 오순도순 함께 고민하고 대화하고 쌓아 올렸던 시간이 아름다웠고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 생이 괴롭기도 했으나 참 아름다웠다. 좋아하는 공부도 만났고 마음이 통하는 스승님, 벗도 만났고 내 부모에게서 나온 것도 감사하다. 선물 같은 나날들이 모여 죽음에 이르렀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아름답게 되돌아가야지. 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