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osystem/꿈꾸는 맘

밤이 선생이다

Musicpin 2020. 7. 15. 13:31

 

 

우리 문학과 우리 사회가 믿는 우리 미래의 힘과 깊이가 바로 그다!

책 읽는 내내 무언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내용이 어려워서도 딱딱해서도 아니다. 생각지 못한 부분을 발견해 낸 시선과 그것을 풀어나간 문체가 감격스러워서다. 책을 펴내며 소감을 말하는 문장들에서 저자의 깊이와 넓이가 보통이 아님을 짐작했다.

 

p. 5 나는 내 글에 탁월한 경륜이나 심오한 철학을 담을 형편이 아니었지만, 오직 저 꿈이 잊히거나 군소리로 들리지 않기를 바라며 작은 재주를 바쳤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주제를 암시하는 제목에 내용을 함축한 엑기스가 있음을 배운다. 하나의 주제를 자신이 겪었던 과거 어딘가와 연결시키며 교차지점을 이야기한다. 그 시공간을 다양한 문체와 탁월한 표현력으로 독자를 흡입시킨다. 더불어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사색하게 한다. 진정 내공이 느껴지는 작가들은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이 일게 한다. 더불어 자신의 소견을 떠올리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대한민국이 지녔던 어느 지점 하나를 도마 위에 올린다. 거기에 요리사의 기분이 어떤지 컨디션은 좋은 지에 대한 안내보다 올린 지점 하나를 두고 요리 한다. 감정을 논하지 않는다. 그저 도마 위에 올린 지점을 자신의 각도로 바라보고 그에 대한 관점을 쓱 풀어놓는다. 맛있게 맛볼 수 있는 문체가 인상적이다. 한 꼭지 글을 읽고 나면 시대적 배경과 우리네 삶을 고스란히 함께 바라보는 내가 보인다. 그에 따른 감정과 생각과 의견은 나의 몫으로 자유롭다. 저자와 대화하는 기분이다.

 

특히 한 장의 사진을 두고 풀어나간 글들이 인상적이다. 여러 각도의 시선과 떠오르는 자신의 경험을 절적하고 알맞게 잘 녹여냈다. 감정에 대해서 풀어놓지 않는데도 여러 감정이 내 안에 인다. 사진 한 장을 놓고도 이렇게 바라볼 수 있고, 해석할 수 있고, 과거 어느 지점과 만날 수 있구나 깨닫는다. 과연 나는 나의 한 지점을 관심 있게 바라본 적이 있던가. 현재를 살자 다짐을 거듭하면서도 그에 따른 행동은 얼마나 미약한가. 스치고 지나가는 일상의 어느 흔적이 내게 말을 걸어도 무심코 지나쳐버리지는 않았나 돌아본다.

 

시에 대한 의미도 어렴풋이 알 듯도 하다. 전에는 시에 대한 매력을 알지 못했다. 시의 매력은 무엇일까. 왜 시를 읽는 것일까. 의문이었는데 이 책을 보고 시의 매력을 어느 정도 알 듯 하다. 시 뒤에 담겨진 많은 것들이 우회적으로, 또는 전경에 이은 배경, 배경에 담긴 전경의 조화를 알 수 있게 한다. 관련된 내 기억의 어느 자락과 공명할 때면 사라락 감정의 바다에 빠져 함께 너울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예시한 시들이 그랬고 영화나 음악, 문학작품이 그렇다.

 

195p. 우리는 여전히 체면을 존중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한 사람이 체면을 세우기 위해서는 그 체면에 손상되는 일을 누군가 맡아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서는 내내 어머니와 아내들이 그 천역을 감쪽같이 감당해주는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 이 경쟁 사회에서 남자들이 그럴듯한 현실과 맞서 공훈을 세우는 동안, 일반 주부들은 어떤 이름도 붙어 있지 않은 자질구레한 현실, 그렇기에 가장 진정한 현실과 끝없이 실랑이를 벌여왔다.

 

주부들이 문화적 자원이라는 말이 반갑다. 나를 알아주는 문장인가 내가 반가워하는 구절인가. 작가가 말한 것처럼 모든 주부들이 누구나 다 시인이 되고 화가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함께 시를 연구하거나 소설을 분석하는 주부 모임들이 생겨나는 것은 환영한다. 화려하지 않더라도 살아있는 순간만으로 성공이고 충분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책에서 말한 책들과 영화들, 문학작품들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 작가란 어쩌면 하루 중 어떤 지점을 자신의 시선으로 낚아 올리고 그에 따른 생각을 건강한 문체로 자유로이 풀어나가는 사람아닐까. 저자가 관심 있게 바라보는 지점, 유려한 문체, 제목이 내포하는 글의 에너지까지 고려했을 때 앞으로 어떤 시선으로 삶을 바라봐야 하고 적어나가야 하는 지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