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osystem/꿈꾸는 맘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Musicpin 2020. 8. 6. 10:33

 

 

아내와 여성의 이행대, 임시구역 육아.

p. 20년 뒤 어떤 직업이 중요해질지, 안정적인 수입은 보장될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약 10년 동안은 정말 불편한 임시구역에서 살아야 한다. 아니, 그 기간은 그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아이를 낳고 키움으로서 나는 결혼 전의 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출산과 육아는 나에게 성숙의 길로 인도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이대로 취직해서 일을 한다는 것에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내가 만나는 대상의 어떤 한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 또는 두 번을 나누어 각각 50분여 만나는 게 고작이지만 그 사람의 일생을 만나는 것과 같았다. 헌데 내가 겨우 손바닥 안에 쥐어지는 자격증을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할 수 있을까. 사람이 그 색을 띄기까지 무한히 많은 세월과 문화와 손길이 뻗쳐 있었을 텐데 진단평가 하나로, 초기 작성서 하나로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기나 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그래서 나의 일에, 인격에 더더욱 자신이 없었다.

 

내 안에 깊이 침몰되어 있으면 나 역시 내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을 만나기 일쑤다. 결혼 전 나의 이행기에는 깊이 침잠해 있는 것이 전부였다. 헌데 엄마가 되고 여자에서 엄마로의 이행대, 이제 여성으로서의 이행대를 걷고 있는 나는 불안과 모호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혼자서 침잠해 있는 것보다 나와 세계의 주고받음을 이해하며 이제 와서야 비로소 내 삶은 나 혼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내가 되기까지 수많은 생들이 겹치고 덧입혀지며 만들어진 교집합의 결과물이다.

 

나 혼자만의 시공간에 은둔해 있던 과거를 본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모호함을 뚫고 보이는 두 공간의 경계를 느낀다. 서로의 문화를 놓고 옳고 그름을 따지며 각자가 가진 철학을 주장함으로 안도감을 얻으려 노력했다. 헌데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결국엔 자연의 일부로서 우리는 서로 인정하고 공명하며 삶을 나누어야 한다. 타인과 삶과 교류하며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느낄 때 공동의 미래를 나누는 것이다. 나 그대로 또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살며 배우는 것이다.

 

자연은 자연 그 자체로의 힘이 있다. 아이도 아이가 세상을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자양분을 이미 가지고 태어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의 경작법, 이 지점에서 엄마라는 역할이 과연 무엇일까 다시 한 번 물어봐야 할 것이다. 자연이 일하는 방식을 알아감에 따라 그에 따른 철학을 지지하고 도와주는 것. 있는 모습 그대로 함께 호흡하는 공존을 나누어야 한다.

 

여자와 아내의 이행대, 여자와 엄마 사이의 임시구역에서 나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희망으로 꿈꾼다. 조만간 나의 이름으로 살날이 다가온다. 그 것이 완성되는 지점이 현재에 있음을, 시간의 원이 완성되는 순간이 여기에 있음을 배운다. 해서 열심히 내조를 하고 아이의 부모로서 책임을 다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관계 안에서 나의 역할을 바라보기도 한다. 나의 이름으로 살지 못하는 날도 많고 눈에 보이는 수입도 없지만 나의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지점이 이 곳이기에 불안과 불완전함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가에 더 중점을 둘 일이다.

 

p.30 시간의 모든 차원이 현재에서 만난다. 과거는 변화하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우리의 희망을 이런 시간적인 만남에서 배태되는 힘이며, 우리가 무엇을 희망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정말로 중요하다.

 

여자와 아내, 엄마의 삼박자를 채워야 하는 나의 삶은 현재 몇 년 째 과도기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행기, 어쩌면 임시구역 지점인 현재의 시공간은 그래서 더 잠재적인 창조의 씨앗이 가꿔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어본다. 해서 주어지는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희생을 선택하며 글쓰고 책 읽는 성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지금 여기에서 현재의 나를 느끼고, 세계와 교류하며, 각각의 존재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 나에게 흘러가는 지금을 그대로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난 세월이 여성으로 살아갈 순간들의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아이를 키워보고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아보며 외딴 섬처럼 지내 본 불확실한 나날들이 도움이 필요한 타인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삶을 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 감히 짐작해본다. 함께 나눌 수 있고 있는 그 자체로 의미 있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연에 충실한 것이다. 그러니 현재를 완성하며 산다.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