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마음이 포근하다. 사진이 많이 있어서 한번 주욱 훑어보았다. 작가들의 일상을 나누는 사진과 소개된 그림책들에서 깊게 숨을 쉬었다. 아, 어느 순간 나는 과정을 생략한 결과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혹여나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마음이 따뜻해졌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감성이 이런 것인가. 어렵지 않은 책이었지만 공간에 머물게 했다. 현재의 나 자신, 지나가는 상황을 바라보게 했다. 갑자기 지나가는 바람도 스쳐가는 태양도 더 자세히 바라보게 된다.
p.7 프롤로그 중.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렸으나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았던 가치가 있다. … 희망, 평등, 우정, 연대, 긍정, 용기....... 나는 가졌고 너는 못 가졌다면서 구분 짓지 않고 어울려 뛰노는 게 좋았던 시절, 친구가 넘어져 울면 안타까움에 눈물을 글썽일 줄 알았던 시절, 감각을 활짝 열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질문하던 시절, 주머니를 채운 딱지, 구슬, 나뭇잎, 자갈로도 만족하고 기뻐할 줄 알았던 시절에 믿고 따랐던 가치들이다.
갑자기 나의 어릴 적이 떠올랐다. 잊고 있었던 나의 어린 시절에는 어떻게 놀았었는지 새삼 궁금했다. 관찰하고 상상하고 공상에 살았던 소녀 시절의 나는 지금 찾아보기가 어렵다. 앞만 보고 달려온 시간들이 스쳐지나간다. 조급하기만 하여 정말 챙겼어야 할 진정한 가치들을 어딘가에 두고 온 것은 아닐까. 저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창의성, 상상력, 호기심, 감수성, 창조 본능. 과연 이러한 것들이 아직도 내 안에 있을까.
한 걸음 먼저 걸어간 저자가 이 책을 구상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오늘이 행복하지 않은 수많은 어른이 간절히 찾고자 하는 지혜, 그리워하는 근원적 에너지가 실은 어린 시절 읽었던 그림책 안에 모두 담겨 있음을 깨닫고 전율했다.’바로 그림책. 글 언어와 그림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그림책. 그 안에서 잃어버린 우리네 감성을 다시 퍼 올리고 싶어 했다.
p.9 프롤로그 중.
진즉 어른이 되었지만, 지금, 더 늦기 전에, 오래전 어느 날 잃어버린 생의 감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뭐든 해야 한다고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시들어버린 창조 본능을 가만히 흔들어 일깨우는 살아 있는 이야기를 모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책에 소개된 10명의 그림책 작가들을 나는 함께 만났다. 인터뷰를 하며 주고받은 대화는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 했다. 테이블 위에 뜨거운 커피를 앞에 두고 마치 작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철학을 함께 공유하는 듯 하는 착각이 일었다. 사람과 사람으로서 그네들과 나의 다른 점은 무엇인지 내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짚어보게 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뭉클하게 올라오는 감정을 진정하느라 애썼다. 내 안에 이는 감정을 미처 정리하기가 어려웠는데 다시금 찾아본 차례에서 마저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질문, 바로‘관찰하는 시선, 상상을 만드는 질문, 공감의 쓸모, 치유하는 상상, 작은 용기, 결점에서 태어난 창의성, 깊은 심심함, 다르게 보기, 오래보기, 시간 사용법, 자기 믿음.’이것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가치와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삶을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누군가 나에게 질문한다면 위의 문장들을 나열하고 싶다.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 경쟁이 우선시 되고 가진 돈에 따라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고 나 이외의 타인을 벗이 아닌 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각박함. 모든 것이 결국은 우리의 영혼이 메말라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가 지금이라도 찾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했다.
내가 했던 예술마저도 공부라고 생각했던 나다. 악기마저도 분석하려 했던 나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도 어느 순간 학습에 관련된 것들을 집어 드는 나의 모습과 작가들의 모습과 겹쳐졌다. 놀이밥을 먹이고 그림책을 읽어줘야 하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책임감에 의한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나의 잃어버린 감성으로 인해 그림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간과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깊은 감동보다는 아이에게 좋다고 하니 해줘야 하는 일종의 부모역할에 머무는 것이다.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게 넘기고 싶지 않은 책이다. 살면서 정말 중요한 가치를 품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예술과 언어가 함께 존재하고 있는 그림책. 올리비에 탈레크가 말했다. “글과 그림이 각각 두 개의 트랙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합니다. 글이 말하지 않은 부분을 그림이 설명하고, 그림이 비워놓은 지점을 글이 채울 것, 글 작가와 그림 작가 두 명의 해석과 관점이 독립적으로 살아 있을 것”삶에 살아가는 데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는 작가들의 모습에서 나의 삶을 비쳐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책이 될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게, 또 나에게도 그림책을 통한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다. 책 속의 인물이 늘 함께 해 주는 친구와 같은 그림책. 또한 책 속에서 만난 10명의 작가들 모두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부모였고 그들이 해 준 조언도 뜨겁게 다가왔다. 그들에 비춰 봤을 때 나는 어떤 부모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도 될 수 있었다. 예술적 감성도 찾을 수 있고 내 삶에 본질적 질문을 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고 부모라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일상 속에서 예술을 누리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그 바람이 나를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