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osystem/꿈꾸는 맘

영화 The Hours

Musicpin 2020. 8. 17. 19:05


삶의 자세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

 

 


THE HOURS, 버지니아 울프 삶 엿보기

 

이 영화, 예민하고 섬세하고 불안하다. 주 조연의 연기자들이 얼마나 연기를 잘했는지 실제 버지니아 울프의 삶을 엿본 것 만 같다. 시작부터 흐름 자체가 우울하고 글루미(gloomy)하다. 온통 회색빛의 음악과 불안을 야기하는 스토리와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까지. 영화 보는 내내 침울했다. 버지니아가 느끼는 삶, 그 자체만으로도 디프레시브(depressive)하다. 몰입이 깊은 만큼 완성도가 높은 영화다.

 

세 명의 주인공이 각기 다른 시대, 다른 공간에서 겪었던 일을 보여준다. 여자의 일생을 단 하루를 통해 보여준다. 딱 하루, 생의 마지막 날을 일생의 전부처럼 보여준다. 많고 많은 날 중 바로 그 날, 그녀의 운명은 정해진다. 하나의 어떤 상황이 나로 하여금 그와 비슷한 결의 감정들을 불러일으킨다. 불러일으켜진 감정은 또 다시 비슷한 상황으로 연결되고 그것이 또 각각 시대별 여주인공들의 시공간으로 연결된다.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이 같은 감정으로 연결된다.

 

여성의 삶, 또는 보살피는 사람과 보살펴지는 사람의 삶. 에이즈와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리차드가 묻는다. 누구를 위해 사는지, 당신의 진짜 삶은 무엇이냐고. 진짜 삶은 자신이 죽으면 찾을 거냐고 묻는다. 그 말은 자신과 함께 하는 지금, 이와 같은 삶은 아무것도 아니냐는 클라리사의 독백이 마음을 붙잡는다.

 

진짜 삶은 무엇이냐니..... 이런 질문....... 곤란하다. 여자이기에 엄마가 될 수밖에 없다. 숙명이다. 어린 자식들을 내버려두고 나 자신을 찾고자 가출한 자신의 엄마 같을 수는 없다. 리차드 역시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라는 상실감에 깊은 우울증이 온 것 아닌가. 자식들을 애써 외면하고 내 삶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자그만 일에도 엄마를 먼저 찾는 토끼 같은 자식들을 도저히 나 몰라라 할 수가 없다. 나의 진짜 삶을 잠시 보류해 둔 것만으로도 숨 막히지만 나만을 바라보는 자식들을 도저히 모른척 할 수 없다.

 

나의 현재가 끊임없이 하는 질문. 어둠 속에서 혼자 고통 받는 데 그 고통을 아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버지니아의 울림이 가슴을 파고든다. 내 인생을 나답게 살고 싶다는 그녀의 울부짖음이, 아무리 더러운 병에 걸렸다 해도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그녀의 외침이 꽂힌다. 사람이 어떠한 상황에 놓였더라도 인간이니까 라는 그녀의 목소리가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리차드를 위하는 클라리사, 버지니아를 위하는 로널드, 자신을 위해 살고 꾸준히 방문하며 파티를 준비하는 클라리사 덕분에 리차드는 산다. 버지니아를 위해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하고 그녀를 위해 적성에도 맞지 않는 인쇄소를 차린다. 오직 버지니아만을 위한 삶이다. 두 사람은 자신을 위해 본인의 삶을 포기하는 노력이 부담스러워 결국엔 죽음을 선택한다. 그 선택 또한 이해가 된다. 그래서 슬프고 우울하고 암울하다. 클라리사나 로널드가 함께 지내고픈 마음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타인을 통해서만 존재 의미가 있는 걸까. 자신의 삶을 찾아간 로라 브라운은 과연 정답이었을까.

 

자신의 아들이 살기 위해 삶을 버린 날, 그녀는 찾아온다. 리차드의 여동생도 죽고 남편은 암으로 죽었단다.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남은 기분이 참담하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좀 편할 수 있겠지만 그건 선택이 아닌 숙명이었다고 이야기 한다. 변명일 뿐 누구도 용서하지 못할 짓이 되었다면서, 죽음 같은 현실보다 삶을 택한 것뿐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 한다. 그래,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회피하지 않고 과감하게 맞서 싸우면서 내 삶의 의미가 뭔지 알았다는 말이 나를 붙잡는다. 내 삶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 삶을 접을 때가 되었다는 독백이 이해된다. 조금 더 아름다울 수 있을 때 상대방을 위해,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살기 위해서 죽는다는 결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더 이상 후회하지 않으며, 바로 지금, 내 삶과 정면으로 맞서서 진정한 나를 찾는 것. 삶을 사랑하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삶. 지금 여기를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