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사 가는 거지?
엄마, 이사 가는 거지?
둘째 아들 녀석이 아침을 먹다가 문득 질문을 한다.
“엄마, 이사 하는 거지?”
“.......”
이상하다. 이 질문만 벌써 몇 번을 하는지 모르겠다. 첫째 아이야 어
느 정도 커서 친구들과 정이 들고 선생님들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이사였고, 아빠가 군인이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슬프지만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헌데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둘째 아들 녀석이 같은 질문을 연신 여러 번 해대니 문득. 이 아이도 설마? 라는 생각이 들어 눈치를 살핀다.
“정원이, 이사하고 싶어?, 아니면, 예전 집이 생각나는 거야?, 이제는 여기가 우리 집이잖아. 우리는 이사해서 이제 여기서 사는 거야.”
그랬더니 아들 녀석.
“우리 집은 8층(예전 집)이잖아, 여기는 2층이고. 이사해야 하잖아”
4살, 만2세인 아이가 예전 집을 자꾸 언급하니 ‘어리다’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나란히 엮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아이는 돌 즈음에 8층 집을 만나서 최근까지 줄곧 그 아파트 주변을 거닐었다. 놀이터에서, 근처 공원에서, 대로변에서. 아이 입장에서는 걷기 시작할 즈음이었고 자신의 발로 걸으며 주변을 탐색하던 자발적인 시기다. 만 36개월을 엄마와 함께 했던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와 함께 수없이 거닐었던 추억이 가득한 곳이 바로 8층 집이다. 게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염원했던 누나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당당히 입학을 하며 4살 형님 자신감을 뿜어대던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했다. 아이는 밝고 아무렇지 않게 보였지만 이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지라 가족이 이동하니 덩달아 따라온 것이 된 모양새가 아닌가.......싶다. 무엇이 아이 마음에 남아 8층 집을 떠올리게 하는 것일까. 어린 아이는 좀 무딜거라 생각했던 내가 작아진다. 그리고 덩달아. 슬프다. 실은 아주 많이.
이제야 직면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지점이 된다. 실은 나 역시 예전 집에서 우리가 만들었던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군인 가족으로서 처음 사는 군 아파트였고 그렇기에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사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가족으로 불리던 시작이기도 했다. 내 이름 석 자를 들어 살던 사람이, 나의 꿈을 위해 깨어있기를 갈망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누군가의 가족으로 불리며 사는 것이 적잖이 스트레스였다. 나의 하루를 온전히 경영하며 건강하게 누군가의 가족으로 불리웠다면 그저 아름다웠다는 단어로 즐거이 추억할 수 있겠지. 허나 나에게 8층집에서의 기억이란 나의 삶이 고스란히 누군가의 가족으로,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으로 내 하루를 만들어야 하는 나날들이기도 했다.
싫은 정 미운 정 고운 정이 무섭다. 나로서 온전히 살지 못하는 하루는 군 아파트 산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그곳을 떠나와 새로운 곳에 살게 되면 그곳이 군 아파트일지언정 이제는 진정 나 자신으로 살리라 다짐에, 다짐에 다짐을 했다. 나답게 살지 못했다는 후회, 연민, 안타까움.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것은 이사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신랑은 여유롭게 정리하면서 이사를 준비하고 싶어 했다. 허나 나는 나로서 살 수 있는 목표와 시간이 눈 앞에 있는데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날짜가 결정되자마자 이사를 서둘렀고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라는 질문의 근본으로 들어가 보면 나는 나로서 존재하기를 열망했다. 해야 되는 책임과 나로서 살고 싶었던 바람이 한데 엮여 아프면서도 나름 교훈을 얻은, 첫사랑과 같은 감정, 교훈을 남긴 8층집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매일같이 신랑의 가족으로 조직에 출근해야 했던 나날들에 나로서 존재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겹쳐 그리도 원망스럽고 아련한 감정을 남긴 것이 아닐까.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어 도망치듯 이사 왔더니 이제와 관련된 감정에 대면하게 되고 관련된 감정들이 빠져나가며 공허함만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그 자리가 슬픈 것은 아닐까.
참, 정의내릴 수 없는 지난 2년여다. 허나 이것도 언젠가 신랑이 전역을 하게 되는 날이면 눈물나게 그리워질지도 모르는 시절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가가 ‘지금 네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고 했던 문구가 떠오른다. 슬프지만 괴롭고 괴로워서 즐거웠고 아름답다고 추억되는 것이 나에게는 신선하다. 내가 나로서 살지 못한다고 괴로운 만큼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도 많이 받았다. 실은 나름대로 인정받은 부분도 있었다. 그러니 첫사랑. 이 단어만큼 지난 2년을 정확히 표현해 주는 단어도 없다.
자꾸 이사를 해야 한다는 아들 녀석과 함께 나의 마음에게도 시간을 주어야겠다. 급하게 밀어붙여 이제와 슬픈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야 하는 우리네 아닌가. 언제나 여기가 꽃자리라 믿으며 오늘 내가 과거를 생각하며 잘 살았다 못 살았다 추억하는 것처럼. 2년 뒤의 내가 이 지점을 봤을 때 후회가 없도록. 아픈 감정은 잘 다독이고 좋은 감정은 격려하며 즐겁게 순간을 살자고 나에게 한 번 더 손을 내밀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