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다 문득
아이들과 산책을 하다 보면 오래 가지 않아 멈춰 설 때가 부지기수다.
“엄마, 거미줄!!”
“엄마, 이리와 봐.”
“엄마, 저것 좀 봐봐.”
“엄마, 이건 왜 이래?”
“엄마, 저건 뭐지?” 등등.
그저 조용히 고요한 상태로 걷는 행위에만 집중하면 안 될까? 내 눈에는 매번 보던 자연의 일부인데 아이들의 눈에는 뭐가 그리 신기한 게 많은 걸까. 산책을 하기로 했으면 산책만 하면 안 될까. 나는 빨리 저기 가서 마무리를 짓고 싶은데 아이들은 내 마음을 몰라준다.
산책 뿐 아니다. 밥을 먹을 때면 밥 먹는 행위에만 집중하면 안 될까. 입 안에서 느껴지는 맛있는 음식 냄새, 어금니가 씹을 때의 식 감, 위가 찼을 때의 포만감. 먹는 행동 자체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밥 먹다 장난감은 왜 들고 올까. 그림책 들고 와 읽어달라면 엄마 밥은 언제 먹을까??
엄마로 사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여성으로 책정해 놓은 목표치를 미처 다 채우지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 할 때가 우후죽순이다.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하지만 스케줄을 따라주지 못하는 체력에도 부아가 났다. 그러다 번뜩 매 순간 목표 지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야 할 일이 어서 마무리 되기만을 보느라 아이의 표정, 말, 느낌, 행동에 오롯이 함께 하지 못하는 거다. 이런, 주객이 전도된 거 아닌가.
목표치, 완수해야 하는 목적. 왜 마무리 지어야 하는지 성취의 의미가 무색해진 Finish Line. 나를 위해 취하는 것이 어느새 나는 없고 결과만 있다. 하나의 과제를 완수하면 다음과제가 기다리는 끊임없는 마라톤이 집안일이다. 이런저런 일에 치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이는 뒷전이고 결승선만 보인다. 그렇다고 진짜 마무리 지어지는 것도 아닌 데 말이다.
“목표 대신 체계system를 세우고 살아라.”
목표와 달리 체계는 강도가 낮은 희열을 꾸준히 느끼게 해 준다. 도달할 방법도 없는 거창하고 대단한 목표를 세우느니 매일매일 삶을 채워 주는 소박한 일을 규칙적으로 하라는 뜻이다.
만화가 스콧 애덤스의 <열정은 쓰레기다> 中. 인용.
책 『멈추지 못하는 사람들 中.』
생략된 과정에 결과만 있다 보니 정작 중요한 현재를 쉬이 보낸다. 지금 여기에서 순간을 살아가는 건 원한다면 늘 할 수 있다. 산책 중이라면 더 자유롭게 만끽할 수 있고. 비 오는 소리, 발 끝에서 느껴지는 바닥의 촘촘함, 수증기가 피어 오르는 강 너머의 산, 물이 번지고 바람이 이는 모든 순간을 아이처럼 바라본다면 결과보다 과정에 더 친밀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