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수는 중요하지 않아
우리 가족은 총 5번의 이사를 했다. 그 때 마다 사는 곳의 평수가 모두 달랐는데 24평, 28평, 18평, 28평, 34평이다. 포장이사가 있어서 많이 편리해지긴 했다지만 나의 손길에 맞게 우리가 사용하기 수월하게 다시 정리하는 시간은 필수다. 초반엔 이사할 때마다 인테리어를 바꾸는 재미를 누리기도 했다. 가구도 이렇게 놔보고 저렇게 두기도 하고, 화분도 위치를 옮겨가며 두었다. 평수가 일정치 않으니 그에 따른 가구 배치나 인테리어도 달라졌다.
지금은 집이나 공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 간결하게 꾸밈을 넘어서 공간에 대한 느낌이나 인상을 주는 것이 좋다. 내가 현재 사는 지점의 공간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다듬는지가 우리 가족의 공간을 결정짓는다는 거다. 이사를 다니다 보니 평수라는 물리적인 것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가정이 머무는 공간에 대한 철학을 담아보게 됐다.
가령 거실은 온 가족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카페처럼 한다. 일명 우리 집의 북 카페. 좋아하는 책들을 읽어도 좋고 함께 공부를 해도 좋다. 차나 커피를 두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온 가족 둘러앉아 보드게임을 즐겨도 좋다. 미술 도구들이 나오면 공방이 되고 놀이 교구들이 나오면 키즈카페가 된다. 피어나는 대화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따뜻함과 서로의 온기를 채우는 시간이 느는 건 감사다.
주방은 우리 가족 공동체 공간이다. 주부라는 영역에 제한 두는 것이 아니라 엄마도 아빠도 때론 아이들도 각자가 할 수 있는 요리의 쉐프가 된다. 남편은 자취음식에 능하고 나는 국이나 집 밥에 능하다. 남매는 사이 좋게 쿠키를 굽거나 계란 후라이를 익힌다. 설거지도 해보고 식기세척기에 맡기기도 한다. 엄마만 요리하고 설거지 하지 않는다. 주방은 가족 공동체 공동의 공간이다. 그리고 가장 기본이면서도 건강을 돌보는 중요한 공간이다.
부부 침실은 오직 침대만, 아이들 방도 침대와 간단한 책을 읽을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는 따뜻한 색채와 아늑한 느낌이면 충분하다. 베란다는 다양한 화분으로 생기를 더하고 욕실은 청결하게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장소는 청결하면 되고 잘 정리하면 더없이 좋다.
가정의 색채가 어떠느냐가 행복을 결정하지 않나 싶다. 평수? 그건 물리적인 공간이다. 나의 마음이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가 포인트다. 상쾌한 아침을 열어주는 사람이 가정 내 누군가 존재하듯이 장소도 마찬가지다. 공간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현재의 공간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나의 손길 가는 곳 어디든 다듬고 손대는 지, 정성을 주는 곳 어디든 생기가 들게 되는지 알게 된다. 서로의 온기가 더해져 완성되는 공간은 우리 모두가 구성원으로 조화롭다는 안정감을 준다.
앞으로도 우리 가정이 이사를 다닌다면 지금처럼 각 공간이 주는 느낌을 고수할 생각이다. 이사를 다녀서 사는 곳이 바뀌지만 정취, 느낌, 온기, 생기 등은 우리가 가져가고 만들어 갈 수 있다. 공간은 비우고 채우고 다듬고 매만지는 유동성이다. 내가 머무는 공간이기에 그렇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공간의 정취도 다르다. 나는 우리 가정이 머무는 공간에 사랑과 따뜻함, 온기, 충만함, 감사가 흘러 넘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