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가 필요해
2,3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한다. 적응이 되려나 싶은데 떠나는 이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건 줄인다고 줄였는데 왜 이렇게 짐이 많아졌지? 하는 거다. 매번 평수가 달라지니 들일 수 있는 가구 수에도 한계가 있는데 살림살이가 늘어난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매번 이사할 때마다 더 이상 늘리지 않으리라 하면서도 다시 이사할 때쯤이 되면 언제 또 늘었지? 싶다. 초기엔 기본 트럭에도 가능하던 살림살이가 최근 이사 때는 5톤 트럭도 부족해 작은 트럭을 하나 더 불렀다. 초과 비용이 드는 건 당연하다.
물론 가족이 늘어감에 따라 오는 일상 품목도 늘게 마련이다. 아이가 하나에서 둘이 되고 가족이 셋에서 넷이 되었다. 육아 관련 물건들이 추가되다 보니 살림살이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물려주고 비우고 버리고 왔는데도 많은 건 뭘까 진지하게 생각했다가 무릎을 탁 쳤다. 결혼 후 점차 늘어난 건 이것 밖에 없다. 바로 책!!!! 아무래도 책이다. 워낙 책을 즐겨 읽다 보니 책꽃이가 하나 둘 늘었다. 그러고 보니 이삿짐센터 일하시는 분들이 집에 들어서자 마자 외치는 소리는 동일했다. “뭔 책이 이리 많아요?”
도서관에서 빌릴 생각도 했고 수시로 빌려봤다. 헌데 그것도 마땅치 않다. 가는 곳마다 도서관 회원증을 만들다 보면 가족 수만해도 4개씩, 그간 만든 회원증은 총 20여장이다. 책이음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도 있고 아닌 지역도 있으니 가는 곳마다 수고로움을 어찌할 수 없어 ‘차라리 그냥 사리라’ 했던 게 늘었다. 빌리고 다시 반납하는 것도 일이 되고 체력적 한계도 왔다. 또한 무엇보다 아이들이 진득하게 보기 위해서는 구입해서 닳도록 보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이사 다니면서 여기저기 학원을 알아보는 건 더 아니다 싶어 ‘책육아’라는 육아방침을 고수했다. 그림책을 읽어주고 보여주고 함께 놀면서 자연스레 책이 늘었다. 물려받은 책도 주워 모은 책도 비싸게 주고 산 책도 있다. 시기가 지나면 적당히 물려주거나 버리기도 했지만 들인 책이 더 많았다. e북으로 보여주면 되지 않나 조언을 듣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성장 후 사춘기 즈음이면 몰라도 어린 시절엔 직접 만져보고 뜯고 맛보는 감각 자체를 느끼는 게 좋을 터. 부드럽기도 하고 부스럭거리기도 한 종이의 질감 자체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나 역시. 전공 도서나 독서 모임, 또는 개인적으로 사 들인 책들의 가짓수가 많이 늘었다. 어쩌면 주방살림보다 더 많을 거다. 명품 백이나 옷보다 책이 좋으니 거실을 북 카페처럼 인테리어 했고, 내심 늘어난 책에 배부른 만족감은 든든했다. 놀다가도 철퍼덕 앉아 책을 읽어대는 아이들의 등짝을 볼라치면 밥 안 먹어도 배가 부르는 건 이런 거겠지 하는 뿌듯함까지 들어찼다. 나에게 책은 삶의 일부이자 더 나은 사람들의 조언이 들어있는 값진 보석이나 진배없다. 그럼에도 슬슬 차오르는 생각.
당장에 비우라면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안 된다 싶지만 이사를 다니다 보니 짐은 많이 늘리고 싶지 않기도 하다. 오우, 이런 곤란한 양가감정. 바닥까지 늘어선 전집이나 책들을 보고 어느 날은 문득. ‘비우기는 해야겠다.’ 정신이 든다. 너무 과하기 보다 정도껏 정리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자니 또 내심 책 하나하나 다 중요한 것 같고. 사느냐 죽느냐 문제처럼 이렇게 고민 되는 게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