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 홍은전

세월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32p. 아무도 죽이지 않았는데 모두가 죽은 것처럼 누구도 지우지 않았는데 도처에서 사라지는 세월호
43p. 각각의 운명으로 달려간 듯 보였던 그 죽음들을 하나하나 연결해나가자 그것이 ‘헬조선’의 통계들과 무섭도록 일치했다는 것. … 그들이 새로 난 고속도로에서 무참히 차에 치여 죽는 고라니들처럼 이 폭주하는 사회의 희생양들임을 깨달았다.
97p. 적은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바로 ‘이웃’, ‘피로감, 혐오시설, 주민재산권 침해’,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기에, 대신 떡을 해서 주민들을 찾아간다.
‘안산 쓰레기 동네에 어차피 쓰레기 될 애들’
하지 않는 게 좋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걸 잘 아는 얼굴.
잊을만하던 때가 오는 건 직접 겪지 않았기에 그렇다. 타인의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내 일이 곧 내 지인의 일이 될 수도 있는 확률의 게임. 단지 나는 저.런. 일 겪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하는 마음이 부끄럽다. 모두 지난 일이 되고 이젠 덮고 싶은 일이, 누구는 덮고 싶으면 덮을 수 있는 일이 당사자들에게는 덮을 수 없고 감을 수 없으니 이를 어찌 할까. 위로도 마뜩잖고 고개를 주억거림도 부끄러우니 진정한 위로와 공감은 뭘까.
자식의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는 어미의 마음을 감히 안다고 이해한다고 말이나 꺼낼 수 있을까. 남의 아픔이 내 것이 아니라고 천대할 수 있는 이들의 무지함에 나는 감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옆에 있으면 묻을까 혹여나 나에게 나쁜 운이 닿지나 않을까 피하게 되는 비겁함에 인간이라는 이기심이 나에게도 심어져 있을지 모를 찜찜함에 몸서리친다.
도라지, 백두산, 민주화 들. 박원순 표 매연 굴뚝 등 사회적 참사.
95p. 재난이 나에게 말했다. 피해 입은 자가 아니라면 누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싸움을 시작할 것인가. … 화재는 우연이지만 참사는 필연… 몇 명의 현장 종사자들만 처벌되었을 뿐, 이 모든 참사를 설계한 진짜 책임자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 백방으로 뛰던 유가족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부패의 사슬 앞에 끝내 주저앉았다.
113p. 경찰과 공무원이 빈민을 상대로 자행한 국가폭력, 선감학원. 가해자인 경기도는 관련 서류가 남아 있지 않다며 시치미.
흔히 권력 있고 돈 있고 나랏일을 한다는 그들만의 리그에 일반인이, 아니 가녀린 생명을 지고 사는 사람이 ‘여기 있어요’ 손들어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이가 되는 세상. 모르면 당하고 알고도 코 베가는 그들만의 리그. 약한 목숨이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도 사람들은 아등바등 위로 올라가기 위해 옆 사람을 밟고 올라서기 바쁜가 보다.
새 권력이 추구하는 바가 누구를 위한 건지도 모르고 내가 모르는 새 자행된다는 게 마음 아프다. 이 나라에 내는 나의 세금의 쓰임새가 불분명하게 누군가의 권력으로 명예로 쓰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찜찜하다. 누구를 위한 법이고 법칙인가. 내가 누리는 것들이 혹은 내가 피땀을 흘려 노력한 흔적이 정부는 이길 수 없다는 체념과 패배감으로 무너져 내리면 어쩌지 겁도 난다.
141p. “그럼 아이들은 어디서 뛰어놀죠? 그 작은 땅마저 꼭 빼앗아야 하나요? 축구장은 남자들만 좋은 공간이잖아요.”
당당하게 말하고 도전하고 싸울 수 있는 힘도 역시 우리에게서 나온다는 희망을 본다, 감히 용기내어 따져 물을 수는 없지만, 그래서 저들의 용기 있는 말과 당당함이 가슴 저리게 부럽지만 나도 함께 할 수 있는, 도움이 될 수 있는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잊지 않고 지워버리지 않고 불합리함에는 끝까지 깨어 있도록 하리라, 자극도 받는다.
그냥, 사람, 장애인 운동이란,
36p. 갇힌 이들은 고통을 덜었을 것이나 가둔 사람들의 평화는 깨어진 것, 오래 전에 깨어지는 게 더 좋았을 ‘우리들의 평화’
44p.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대는 그 순간에도 자신들의 목숨이 이 고라니 같은 존재들에 의해 얼마간 연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탈시설-자립생활, 장애등급제ㆍ부양의무제, 2001년 ‘이동권을 보장하라’ 2007년 ‘사람답게 살고 싶다’ 2009년 ‘탈시설 권리’ 그들을 위한 활동지원 제도, ‘우수 시설’로 선정된 희망원. 문이 열렸음에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 대한민국 최고의 버스와 장애인은 탑승할 수 없는 버스, 기초생활보장법-자신의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해선 이 사회가 통째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았던 사람, 최옥란. 변한 건 송국현의 장애가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의 환경,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령인 장애등급제, 시설에 들어가던 예산을 거주인들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에 써야 한다는 것을 깊이 공감한다.
79p. 이 세상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들, 속도를 낮추고 상처를 돌보았어야 한다. 상처 난 곳으로 온갖 악한 것들이 꿀처럼 스며드는 법이다.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같은 목숨이라는 걸 잊는다. 너와 나의 느낌이 비슷하고 먹고 자고 싸고 하루를 살아가는 게 같은 사람이라는 걸.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닌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귀한 생명이라는 것을. 센터에서 장애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장애에 등급제가 있어 바우처의 지원 금액이 다 다르다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장애가 동물처럼 등급이 메겨져 있었다는 걸 깨치고는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어떤 이는 기를 쓰고서라도 장애가 아니기 위해 많은 돈을 현금으로 ‘일반’결제 하는 것임을, 이제야 이해했다.
매일 만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자신의 좋고 싫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어렵고 쉽고를 분간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여느 아이들 못지 않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현실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아 잠시나마 울적했다. 그나마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자상하지 않더라도 챙겨주는 부모가 있고 생활보조 서비스 선생님 도움을 받아 여러 수업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의 정도가 조금 더 있는 중증 장애인 아이들은 잘 볼 수 없고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어딘가에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사각지대 밖, 숨소리초자 들리지 않는 그곳에서 혼자 외로이 ‘쓸모 없는’ 생명으로 천시를 받고 있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돈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없고에 따라 대접도 다른, 혹여나 자신의 아이가 수업 하나라도 빠지게 될까 센터에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 동네의 흔한 유치원은 그림의 떡, 일반 초등학교에 보냈지만 특수학급에만 보내지는 현실(109p.), 장애는 죄가 아니라 그저 약할 뿐이라는 걸, 일일이 찾아 다니며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현실 앞에 엄마는 얼마나 매번 무너져 내렸을까.
법과 제도가 확장되었어도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은 여전히 그때의 저열함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는 말에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현장의 일부분에서 일하고 있는 나조차 진정 움직일 수 없는 자들의 털끝도 볼 수 없는 건 아닐까 의구심도 든다. 내가 본 현장은 아이들에 불구하지만 이 아이들이 나아가야 할 미래는 닿지 못하는 어딘가에 표류하게 될 지는 않을지 심난하다.
도미니언
오직 살찌는 기계로 산 돼지, 자식을 빼앗기는 소,
“우리는 소, 돼지가 아니다. 장애인도 인간이다.” 오랜 슬로건에서 짐승이란 권리 없는 존재였고, 인권은 항상 그들을 딛고 올라서는 것이었다(231p.)는 책의 기록에 감히 나라고 다를 게 무언가 비겁함에 입이 바짝 말랐다. 내가 먹었던 돼지와 소와, 동물원에서 봤던 원숭이들과 오랑우탄, 범고래, 그리고 곰. 쇠로 된 방, 그리고 그것들의 끝없는 도열. 그 안에서 가슴에 반달을 가진 곰들이 격투기 하듯 철창을 들이받으며 울부짖는다니, 도미니언 영상을 접한 나로서는 당시의 충격과 생생함이 고스란히 느껴져 소름이 끼쳤다. 인간이라는 짐승이 두뇌가 더 크고 강하다 하여 그들에게 취하는 행동에 속이 메스꺼웠다. 나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이 동물들에게 자행되는 패륜에 일조하는 것만 같아 죄책감이 인다.
255p. 글쓰기 선생님은 좋은 글을 쓰려면 오감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냄새와 촉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모두를 잘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나는 그것이 언제나 힘들다고 느꼈는데, 이제야 그 이유가 쓰기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감각 능력의 부족이었음을 알겠다. 선생님이 나에게 쓰라고 한 것이 ‘글’이 아니라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맞는 ‘감각’ 그 자체였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p.25p. 글쓰기는 언제나 두려운 일이지만 내가 쓴 글이 나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라는 기대 때문에 계속 쓸 수 있었다…화살표 같은 존재들…말하자면 우주와 맞서는 일…글이라는 현장
따져 묻거나 감히 용기나 나지 않을 때 글은 말보다 강할 수 있다는 걸 이 책은 증명한다. ‘언어의 수용소’가 있다면 필시 갇히고야 말았을 ‘추하고 열등하고 쓸모 없는’ 말들이 해방되는 자유함을 조금이나마 열어 보일 수 있는 공간. 글은 힘 없는 자에게 힘이 되어 주고 말 못하는 자의 언어가 되어주며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조금이나마 쓸모가 되어주는 작지만 큰 힘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실감한다. 아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 드는 안타까움을 지면을 통해서나마 기억하고 사진을 통해서나마 떠올리고 (책에서 소개되는)다큐에서나마 그들을 기릴 수 있다면, 발가락의 발톱만큼은 함께 하고 있는 거라 위안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