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다
질문하다
유투브 김미경 TV에 명진 스님 편이 보인다. 명진 스님이 누군지 몰랐는데 ‘나를 지키는 내공과 힘을 만들려면 아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힘든 불행도 내편으로 만드는 법! 마음에서 힘을 빼라고?’ 라는 제목에 끌려 클릭했다.
결론은 몸과 마음에 힘을 빼는 것이란다. 이건 요즘의 나에게도 화두가 되는 이슈다. 산다는 게 뭘까? 어떻게 살아야할까? 어떻게 살까? 나는 누구일까? 내가 나답게 산다는 것은 뭘까? 끊임없이 내가 나에게 묻는 질문이다. 해서 마침 스님이 자기의 존재에 대해 묻지 않는 삶은 천년을 살아도 만년을 살아도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말씀하심에 공감이 인다. 내 삶에서의 모든 행위의 결과, 원인까지 다 나한테 있다고 보는 것. ‘모든 원인은 바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단다. 인생에서 견디는 과정이 곧 내공, 내가 견디는 힘이 된다면서 고난에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정면으로 마주치면서 걸어 나가라는 말씀이 와 닿았다.
덧붙여 나에게 딱 와 닿는 질문과 답이 있었으니.......
명진 스님. “성철스님께서 이름도 지어줬는데 뭔가 나하고 안 맞아요. 그러니까 못된거죠. 성철 그러면 삼천배하고 만나 뵈려고 오는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근데 나는 왜 삼천배를 하고 만나야 하는가?”
김미경 원장님 질문. “권위에 도전한 거에요,지금요?”
명진 스님.“아니, 도전이 아니고 묻는거죠. 뭐든지 물어야 된다는 거죠. 상식적이고 그렇다고 하는 것들에 대한 물음만이 역사를 진보시키고 인간의 삶을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이런 물음이 없으면 그냥 틀 속에 종속이되고 따라 사는 인간이 돼버리면 그건 정말 막연하게 사는 거죠. 그러니 항상 질문해라. 일상적으로 옳다고 규정되었던 철학, 종교....... 이런 것까지도. 왜? 왜?”… 그냥 행동하면 되지 왜 글을 보느냐. 종이를 뚫어지게 쳐다봐도 해답이 안 나온다는 거죠.
권위에 대한 도전. 매사 목이 말랐다. 나만 의구심이 드는 걸까. 정말 다른 사람들은 괜찮은 걸까. 군인가족으로서 살면서 드는 만감의 순간들은 내가 신랑의 밥벌이에, 지난 억겁의 세월 속에 세워진 문화에, 이미 쌓아올려진 군인 가족이라는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을까. 그냥 조용히 유연하게 너울대며 흘러가면 그만이련만 왜 순응하지 못해 모두 불만이었던 걸까, 나 자신에게 불만이었고 나의 생각과 감정에 의심했다. 왜 군인가족으로서의 삶에 자꾸 반기를 드는 지 내 자신에게 물었다. 완전히 싫은 것도 아니고 이제는 어느 정도 분위기도 알겠는데 무엇이 내 맘 같지 않은지, 모두 다 내 맘 같은 수는 없다고 설득도 했다. 나만 이상한 건가 싶어 불만도 생겼다. 상명하복의 분위기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납득해보려고도 했다. 비슷한 상황에서도 사는 모습은 다 다르고 사람마다 느끼는 것도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매사에 불만을 토로하는 나도 달갑지 않았다. 내적 갈등의 연속. 만족이란 없는 걸까. 내 맘에 다 드는 천국과 같은 상황만을 바라는 것은 아닌지 따져 묻기도 했다.
왜? 왜? 왜? 그러는지 순간순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질문했다. 자책과 타협을 번갈아 고뇌하고 있는 중에 스님의 말씀이 탁. 울린 거다. 나는 감히 권위에 대한 도전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일상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군인가족의 문화, 분위기, 옳다고 흘러왔다는 흐름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당연하다는 것들이 나에게 당연하지 않을 때, 납득이 되지 않을 때. 답을 주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물음표를 든 것이다. 과거부터 흘러왔을지언정 내가 나고 자란 현재의 세대와 문화는 상명하복의 과거적 그대로의 강압적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다. 군대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는 많은 변화가 주어지는 시도를 하는데 군인 가족에게도 시도가 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를 노력 하는 것이라면 군인 가족의 삶도 윤택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가 서로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