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녀를 지나
경력단절녀를 지나
글쓰기 스승님의 책. <엄마라서 참 다행이야>에 나오는 대목.
내 이야기다. 당시 첫째 아이가 8,9개월 무렵. 다시 글을 읽으니 새록새록 하다. 당시의 마음가짐도 새삼스럽고. 까꿍이 아가였던 첫째 아이가 이제 3개월 뒤면 벌써 초등학생이다. 시간이 금방 간다던 주변 어른들의 말이 와 닿지 않아 당시엔 까마득하게 여겨졌던 시간들이다. 그런데 어느새 초등학생이라니....... 나조차도 여기까지 올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 당시 정말 우연하게도 난 마더코칭 수업을 듣게 됐다. 어린이 도서관에서 여러 강좌를 열었고 그 중에서 마더 코칭이라는 수업이 마음에 끌려 신청했다. 아이와 함께 수강해도 된다는 것에 더 안심이 되기도 했고. 백화점이나 마트로 다니는 아이 교육은 많이 겪어 봤지만 당연하게 진행되는 아이들을 위한 강좌나 교육은 자본주의 시장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엄마 역할에 대한 궁금증이 나에게 더 큰 목마름으로 다가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라면 알고 있어야 할 가장 본질적인 무언가가 필요했고 자연스레 스승님 강좌에 끌렸던 것 같다.
그게 시작이었다. 아이와 내가 더 견고해지고 엄마로 온전히 살 수 있었던 시간. 아이와의 애착을 위해, 또 나를 위해 이유 불문하고 행동하기로 했다. 설령 경력단절이 되더라도. 정말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뭘까 하고 들여다본 이상, 스승님의 강의를 통해 육아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안 이상, 알면서 모르는 척 고개 돌릴 수가 없었다. 육아를 통해 삶의 지경을 넓히고 뭐든지 배우리라 그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물론 좋기만 하다면 거짓말이다. 엄마로 주어진 역할은 곧 여성으로서의 나를 잠시 내려두는 것이기에 평안하지만은 않았다. 과연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을 매번 동반했던 것 같다. 여성으로서의 나와 엄마의 역할 사이에서의 갈등은 수없이 반복되었다. 그래도 난 엄마의 역할을 포기할 수 없었다. 생글거리는 아이의 지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버텼다. 지금 나가서 돈을 번다고 해도 아이의 영유아기는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다독였다. 당시 마더코칭 수업으로 만난 선생님은 글쓰기 스승님이 되었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던 시간들을 스승님, 글벗님과 함께 독서와 글쓰기로 의지했다. 우리는 각자가 놓인 현장에서 주어진 삶들을 살다가 매 달 말이면 그룹톡으로 만난다.
경력 단절녀라는 수식어가 붙어도 어색하지 않을 7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뒤에 현재 내가 서있다. 2019년이 끝나가는 12월. 나는 다시 나로서 세상에 선다. 선배의 연구소에서 함께 일하기로 했고 「THE 이:음 project」로 시작한다. 모-아를 위한 치유음악회로 아이와 엄마가 함께 다양한 음악경험을 하면서 애착을 다루는 콘서트형 공연이다. 당연히 치료사는 가이드 역할이고 주역할은 공연에 참석해 주는 여러 커플의 엄마와 아이이다. 두 번의 음악회를 시작으로 내가 맡을 태교 프로그램도 홍보에 들어간다. 부모와 아이의 소통, 관계에 집중해 공부하다보니 다시 만난 일들도 준비한 공부들과 맞아 떨어져서 반갑다.
7년 전 일을 놓을 때는 미래가 두렵고 불안했다. 헌데 지나고 와서 보니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무직인 7년 동안 세상은 바쁜 듯 흐르면서도 큰 틀은 변하지 않았다. 안심이다. 한두 번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적응될 것 같다. 전공공부의 틀을 놓지 않았고 독서와 글쓰기, 육아로 내공을 다지길 잘 했다. 언젠가 다시 만날 세상에 내가 너무 뒤쳐져 있을까봐 악착같이 공부해낸 보람이 있다. 피와 땀이 얼룩진 노력으로 뱃심 두둑하게 도전해보려고 한다. 하고 싶었던 분야를 삶에서 버무려내는 것도 내 몫이다. 육아로 인해 갈고 닦은 노련미와 배짱, 함께 습득한 디테일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