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가족입니다만...

나는 엄마다

Musicpin 2019. 8. 27. 14:26

나는 엄마다

옥녀봉 중턱 쯤 자리한 놀이터. 우리 가정 포함 총 세 집이서 나들이를 갔다. 책육아,  함께 아이들 놀리기, 육아 이야기(수다)까지 13조였다. 그 날은 둘째 아들이 세 살 즈음. 30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다. 옥녀봉 놀이터에 있던 미끄럼틀 위에서 5살 남자 아이는 우리 아들을 때렸다. 마치 스트리트 파이트 게임 한 장면처럼(실제 아이네 집엔 스트리트 파이트 게임기가 있어 자주 했다.). 왼손으로 때리고 오른손으로 주먹을 날렸으며 왼발로 차고 오른 발로 내리찍었다. 아들은 쫙 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 쪽을 가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고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얼음.

 적막이 흘렀고 다섯 살 아이는 내가 지켜보고 있음에 당황했는지 도망치듯 미끄럼 타고 내려와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놀라서 백지가 되었다. 아무 생각도 행동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맞아서 놀랐을 아들을 얼른 품에 안았다. 품에 꼭 안고서 그 장소를 벗어났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내가 정말 많이 놀랐다. 내가 아는 다섯 살 중 저렇게 때리는 아이가 있었던가. 양 손과 양 발을 사용하여 때리는 아이가 있다니....... ? 무엇 때문에? 그저 형과 같이 놀고 싶었을 뿐인데? 타인을 때린다는 것에 대한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정에서 가르치지 않나? 먼저 차지한 미끄럼틀이 자신의 영역이 되었기에 때린건가? 이유를 막론하고 때린다는 것은 타당한 건가?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 아이 주도 하에쟤랑 놀지마.’로 여론 형성이 되어 따돌림도 받았다. 더군다나. 내 아들이 미끄럼틀 계단에 가만히 줄만 서 있는데도 쟤가 자꾸 밀었어요.’라는 상황까지.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써 보지만 그 날 만큼은 파노라마. 한 조각 사진처럼 트라우마로 각인되어 버렸다. 그리고 우리 아들을 볼 때마다 내가 그 때 아무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이 인다.

아이 엄마에게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아이 엄마는 통화 중이었다. 설령 함께 봤다고 한들. 사과는 커녕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 아들만 따돌리며 놀 때 그 엄마는 나에게 아이들 노는 문화에 끼어들지 말라던 엄마다. 말해 무엇할까.

아들이  같이 놀고 싶다며 닫힌 문 앞에서 울부짖을 때, 나의 아들만 따돌림 당할 때,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내 아들이 상처 받고 있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가 아이들 노는 문화의 적정선인가? 내가 아들을 다독거린 후 따라오는 말은 예민한 엄마, 호들갑스런 엄마, 아들보다 딸 키우기 적당한 엄마, 딸에 맞춰진 엄마였다. 사과를 하는데도 돌아오는 말은 예민한 엄마에 아이가 따돌려지는 상황이라면. 내 아들에게만 유독 부정적이고 안 좋은 분위기가 흐른다면. 나는 선택해야 했다. 내 아들을 소외시켜가면서 아이들과 놀리고 엄마들과 관계 유지를 하느냐, 아니면 내 아들의 보호자로 아이를 지킬 것이냐.

당연히 나는 내 아들이 먼저다.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값 없는 수다보다 내 자식이 더 귀한 엄마. 내 아들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데 지켜만 보라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나를 생각한 조언일까. 그 엄마의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자신의 아이에게 이기는 경험을 주기 위해 다른 동생을 때려도 된다는 것이 옳은 것일까. 억울하지만 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을 때. 오히려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 취급 받을 때상대방 엄마 옆에 서서 나를 적대시할 때.남자아이들은 그렇게 서열싸움이 당연한 거다, 이해 해야 한다' 할 때. 과연 자신의 아이가 그렇게 맞았다면 점잖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결국 관계가 껄끄럽게 되었지만  나는 아들을 위해 거리를 두는 선택을 했다. 같은 상황이 또 온대도 나는 똑같은 결정을 할 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람을 가려 사귀라고 아들에게 이야기해 줄 거다.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는 진심일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나와 아들만 바라보고 집중한 후, 안정감있게 잘 살고 있다. 혹여나 또 나 혼자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온다 해도 난 내 아이를 지킬 거다. 나 혼자라 극성 맘이 되고,  이상한 엄마, 요란한 엄마, 과도한 엄마로 불릴지언정. 내 아이의 미소와 건강한 내면을 지켜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아이의 보호자로서 나는, 나의 아이를 잘 보살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나는. 나는 엄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