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하루

혼자 집에서 뭐하세요?

Musicpin 2020. 2. 17. 15:16

소복이 쌓이 눈. 오랜만에 온통 새하얀 세상. 문득 누군가 '혼자서 집에 있으면 뭐하냐' 물었던 질문이 올라왔다.

 

혼자 집에서 뭐하세요?

눈이 온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기온이 떨어지면서 눈 알갱이로 바뀌겠다고 하던 일기예보가 떠오른다. 비교적 늦된 시간에(11:00am)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오는 길에는 수요일에 있을 아들의 생일 파티 답례품을 포장할 것들을 샀다. 나름 콧바람이다.

올해가 시작되면서는 짧은 해나 매서운 날씨를 핑계 삼아 게으름을 피워봤다. 머리가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할 땐 아무것도 안하고 머리와 가슴을 비워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득 누군가 혼자서 집에 있으면 뭐하냐 물었던 질문이 올라왔다. 가만.......있다가 내가 혼자 집에서 하루 종일 뭐하나 떠올렸다. 보통 집안일을 많이 한다, 당연히. 또 책도 읽고 글쓰기도 하고 유투브로 좋은 강의 듣기도 하고. 올해 시작하는 1월에는 거의 아이들과 함께 방학 아닌 방학을 보냈다. 한 달 내내 집에서 함께 꼼지락거리다 겨우 8일만 출석했으니 나에게 태린으로서 주체적으로 사는 시간은 얼마 없었다고 봐야 무방하다. 이번 달인 2월에는 시댁식구들도 놀러 왔다가고 같은 아파트 사는 군인 가족을 초대해 함께 저녁 식사도 하면서 보냈다. 거의 손에 꼽히는 일이지만 말이다.

입춘이 지나고 3월이 코앞인 이 지점. 내리는 눈을 바라보다 문득. 에세이스트로 살면 어떨까 싶었다. 선생님과 언니, 셋이서 하는 글쓰기 모임에서는 좋은 책을 읽고 나누는 것이 삶의 활력소였다. 마치 비밀 친구처럼. 글을 쓰더라도 우리 셋 만에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안전하게 느껴졌고 부족한 글 솜씨를 그나마 조금 열어 보일 수 있는 시크릿 장소였다. 감히 외부에는 열어 보일 자신도 없었고.

결혼과 육아를 시작하면서 살아온 9년차. 나름 지난 시간을 정리할 수 있는 결과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해서 계급대로 누군가에게는 인사하고 인사하지 않는 어떤 이를 보고 드는 상대적 박탈감. 상대방의 계급이 어떤지 알면서 모른 척 하는 예의. 신랑보다 높은 계급이면 조심하고 낮은 계급이면 일단 안심하는 계급사회. 때론 꼰대가 아닌 것처럼 계급을 묻지도 않지만 알고 행동해야 조심할 수 있다는 안전망이 작동하는 이 작은 사회에서. 나로서 깨어있는 삶이 간절한 작은 몸부림 정도라고 생각해봤다.

에세이스트.

수필 또는 에세이(essay)는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한 산문 문학이다. 주제에 따라 일상 생활처럼 가벼운 주제를 다루는 경수필과 사회적 문제 등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중수필로 나뉜다.

예전에 글쓰기 모임에서 함께 나눴던 책.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를 다시 펼쳐봤다. 내가 에세이스트?! 가슴 속 메아리가 있는 울림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감히 어떻게 하는 줄도 모르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지만 말이다. 누군가의 가족, 애들의 엄마로만 불리다가 나로서 온전히 자유하게 느낌과 사색을 만날 수 있는 나만의 공간.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커다란 노동이 드는 것도 아니니. 두근두근 꿈 명함에 MUSICPIN(나와 나, 나와 너를 음악으로 잇는 음악치료사) 새기던 날도 떠오르면서 이력란에 음악치료사 다음으로 에세이스트 다섯 글자 한 줄 더 그려보면 참 좋겠다 바람도 들었다.

2월이 보름 남짓,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3월이 겨우 2주 남짓. 잔뜩 웅크렸던 지난 시간들의 씨앗이 꽁꽁 얼었던 땅이 녹아 연녹색의 싹을 틔우는 것처럼 내 안의 것들의 작은 소망 하나 틔워봐야지 싶다. 이쯤 되면 혼자 집에서 뭐하세요.’ 질문에 대한 답은 충분히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