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자리 그리고 엄마가 된 나의 공간에 대하여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기 만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아이들 방, 안방, 티비방(컴퓨터,프린터기), 거실. 현재 사는 아파트에는 방이 3개, 주방과 연결된 거실, 욕실이 두 개, 세탁실 포함한 베란다와 빨래를 널어놓은 베란다.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베란다가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에라야 아이들 방은 놀이방이었고 안방에서 같이 잤으며 티비방은 크게 사용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때와 크게 달라진 점은 없으나 아이들이 커갈수록 공간의 분리가 이루어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의 공간도 함께 말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옷이 수북이 쌓인 어느 한 구석에 테이블을 놓고 노트북이 올려져 있었다. 아이들이 잘 때 언제든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공간. 어느 정도 컸을 땐 주방 한 구석에 엄마의 자리를 마련해 다이어리와 노트북, 책들을 올려놨었다.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것은 주체적인 인간으로서 삶을 사유하고 감응하는, 최소한의 나를 유지할 수 있는 보장된 공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이사를 다니면서 혹은 어느 방에서든, 거실에서든 한쪽 구석에 자리하면 나만의 장소가 되고는 했다. 내가 나를 만나는 유일한 장소. 그것이 어느 구석이든 마련되는 테이블 위라고만 생각했다.
주방이 전적으로 엄마의 공간이 된다는 의견을 깬다. 주방은 우리 모두의 공동 공간이며 밥은 엄마 혼자 하지 않는다. 밥은 아빠도 할 수 있고 엄마도 할 수 있으며 쌀은 남매가 모두 씻을 수 있다. 요리는 엄마 혼자의 전유물이 아닌 온 가족이 함께 한다. 거실도 마찬가지다. 북카페처럼 인테리어를 고수하는 데는 거실에 자리한 테이블에서 가족이 함께 책도 읽고 과제도 하고 온라인 수업도 함께 한다. 공유의 자리가 되기도 하고 혼자만의 넓은 책상이 되어주기도 한다. 식탁이 되었다가 카페 테이블이 되기도 한다.
내가 나로서 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빈 공간에만 악착같이 고수하던 의견을 내려놨다. 주방이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듯, 거실이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 듯 말이다. 나만의 공간이라고 아끼고 아껴 마련해 놓으면 금새 남매의 아지트가 되고, 엄마만의 장소가 꼭 비밀스런 무언가를 감춰놓는 것만 같아 보물찾기 하듯 꿰차는 남매를 보면서 나만의 장소는 공간에만 의미 둘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고요한 성소는 사실 공간에만 국한될게 아니라 언제든 혼자서 조용히 시공간을확보 할 수 있는 시간이 동반되어야 했다.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든 밤에도 시도해보고 등원 후 오전 시간도 시도해봤지만 나에게 가장 만족도가 높은 시간대는 새벽이었다. 밤에는 아이들이 잠을 자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고 오전에는 이런저런 일상으로 변수가 많았다. 오직 새벽만이 오롯이 혼자였다.
새벽 기상으로 홀로 되는 시간을 만들어야 나만의 공간이 가능하고 시간을 확보한다. 지금에는 공간에서라기 보다 우선 순위에 따른 시간 확보가 먼저 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을 시간에 일어나 나만의 일정을 소화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건 깊은 만족감보다도 더 진한 무언가다. 컴퓨터가 놓인 티비방에 나만의 테이블을 놓고 시각적으로는 두지만 무조건 나의 장소이니 침범하지 말라 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언제든 털썩 앉아서 집중하고 접어두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확보되면 그곳이 주방 한 구석이든 거실 한 가운데이든 티비방 테이블이든 다 좋았다.
새벽기상을 한 날과 못 한 날의 차이는 뭐랄까. 감정과 집중의 밀도가 촘촘하다 못해 견고한 느낌. 응집되고 응축되어 고도의 진하디 진한 엑기스 같다. 푸드덕 사라질 날갯짓이 아니라 더 멀리 닿기 위한 도약의 도움닫기. 이상으로의 도약, 하루의 시작에 힘찬 첫 발걸음이 되어준다. 새벽기상을 한 날과 아닌 날의 몸 상태는 O, X의 기로지만 컨디션의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안정감과 중심이 잡힌 상태로 하루를 시작하는 깊은 내면의 상태가 지속된다. 만족감은 이루 형언할 수 없다. 나에게 공간이란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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