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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좀 초대해줄래

2021. 9. 1. 11:10 | Posted by Musicpin


늘 아이는 양 손으로 귀를 막고 ‘아-‘ 를 끊임없이 했다. 인사를 건네도 ‘아-‘, 환영하는 노래를 부르는데도 ‘아-,‘ 악기 연주 해보자 손 내밀어도 못 들은 것처럼 ‘아-‘. 음악치료 시간에는 음악이 필수인데 아이는 음악을 듣고 싶어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인과의 소통을 아이는 원하지 않았다.

아이의 양육자는 음악과 좀 친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뭐라도 관심을 보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음악치료 시간을 신청한다고 했다. 어렸을 적에 경험한 음악치료니까 뭐라도 하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신 듯 했다.

말씀대로, 아이는 음악 뿐만 아니라 나와의 소통도 쉽지 않았다. 치료실에 들어오는 것부터가 원만하지 않았는데 버튼 누르기가 더 재밌어서다. 엘리베이터 버튼, 자동문을 여는 버튼. 부드럽지만 분명하고 단호하게 제지하고 음악실로 들어가면 아이는 자신의 두 다리로 서서 교실을 빙글빙글 돈다. 그게 더 재밌다는 듯이. 당신과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면서.

자신만의 세계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거부하는 아이. 사람이라면 당연히 사회적 동물이라 타인과의 소통은 본능적이다. 먼저 다가가거나 아니면 관심을 보인다거나. 나 역시 타인과 이야기하고 눈 마주치고 함께 나누는 소통에서 따뜻함을 느끼기도 한다. 헌데 이 아이는 그마저도 원치 않다 하니 어찌하면 좋을까. 그냥 그대로 두자면 아이는 영영 혼자서 자신의 세계에만 있을 것 같아 일단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다. 음악치료사가 음악 없이 한다니 맥락이 맞지 않을수도 있으나 소통이 먼저였다.

아이만이 정한 그 공간으로 초대해 주도록 기다렸다가 잠깐 잠깐 열어 보일 때를 기다렸다. 잠시나마 실내 어딘가에 집중되어 손이 내려올 때면 잽싸게 ‘반가워’ 노래했다. 단어 하나라도 좋으니 잠깐의 틈을 매사 주시하며 기다렸다. 다시 귀를 막으며 내면의 문을 닫을 때면 옆에서 미소로 응시하며 함께 했다. 움직이면 움직이고 멈추면 멈추고 걸어가면 나도 나란히 함께 걷고. 아이가 곧장 알아채지 못해도 건네고 싶은 마음은 하나였다.

‘네가 걷는 그 모든 곳에 내가 함께 할게.’
‘혼자 있고 싶을지 모르지만 네 옆엔 너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그 중엔 나도 있을거야, 네가 준비될 때까지 언제든 여기서 기다릴게.’
‘넌 혼자가 아니고, 우린 함께야.’

아이가 아는 지 모르는 지 알 수 없으나 진심은 통하리라 믿는다. 당장에 듣지 않는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의 문을 열거라 믿는다. 언젠가 아이와 함께 박수만 치더라도 감격스러울 것 같다.


사진출처.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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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으로 사용하는 감각통합실, 음악실로 가기 위해 아이의 손을 잡고 지나간다. 안부도 묻고 한 주 어떻게 지냈는지 말도 건네고. 대답이 없을 아이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런두런 말을 건넨다. 음악치료실로 가려는 목적이 분명한 나에 반해 아이는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며 어기적어기적 걷는다. 그러다 문득, 한 켠에 놓인 비누방울 스틱을 아이는 갑작스레 빼앗듯 집어 들었다.

‘이건 우리 시간에 하는 게 아냐, 우린 음악실로 가자. 그리고 이건 물건 주인에게 사용해도 되느냐 물어보고 난 후 괜찮다고 하면 그 때 사용하자.’

가지고 놀고 싶었던 마음이 원하는 방향으로 되지 않자 아이는 그대로 주저 앉았다.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아이. 나의 어깨까지 키가 크고 끌어당기는 힘이 내가 흔들릴 만큼 센 아이. 한번 주저앉자 더 이상 끌어지지가 않는다. 몇 번을 가져갔다 빼앗아왔다 반복하자 급기야 아이는 목청껏 울기 시작했다.

‘하고 싶어요. 그거 주세요. 당장 내놓으라고요’ 하듯 아이는 자신의 온 힘으로 버티고 실내가 다 울리도록 운다. 원하는 것을 갖고야 말겠다는 고집과 우리 물건이 아니니 그럴 수 없겠다는 의견이 맞섰다. 하고자 하는 바람이 다른 우리는 그 자리에서 팽팽하게 대립했다. 원하는 목적이 ‘비누방울 놀이’와 ‘음악실로의 이동’으로 다를 때 치료사로서 나는 어떤 자세와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의사소통이 되지 않고 아직 말도 안 하는 아이. 울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아이. 본능적인 욕구만이강한 아이. 이쯤 되면 다양한 의견이 내 안에서 분출된다. ‘그냥 쥐어줄걸 그랬나. 아니야, 그래도 알려줄 건 알려줘야지. 그래도 저렇게까지 울면서 하고 싶다고 하는데……. 아니야. 아이가 진정 바르게 자랄 수 있으려면 자신을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힘도 길러주는 게 나의 몫이야.’

결국, 아이는 비누방울 놀이도 못하고 나는 음악실로 이동도 하지 못했다. 우리는 둘 다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힘겨루기를 했다. 알려주려는 자와 알고 싶지 않다는 자 사이의 긴장감이 우리 사이에 놓였다. 기본적인 태도가 될 중요한 습관을 형성하는 과정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행동은 단호했지만 마음으론 함께 울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아이와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다른 아이를 만난다는 건, 우주를 만나는 일이다. 내 아이가 귀하듯 이 아이도 귀하다. 나의 기준이 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에서 적응해 살아가려면 기초적인 규범은 알고 자신을 스스로 조절하고 내 물건이 아니라면 내려놓을 수 있는 통제력도 있어야 한다. 자리에 앉아 혼신의 힘을 다해 우는 아이 옆에 가만히 앉았다.

이젠 바닥에 누워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겠다 귀를 닫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건 등을 쓸어 내리는 행동만이 유일했다. 비록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지는 못하지만 이 순간에는 함께 하고 있다 알려주고 싶었다. 울음을 그치고 마음이
진정될 때까지 나는 여기 있겠노라 아이에게 온 마음을 다해 전해주고 있는 행동이기도 했다. 단호하지만 혼자 두지 않겠다는 진심으로 아이의 공간에 함께 머물고자 했다. 눈물에 가려 알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비누방울 스틱

내 앞에서 이제 막 기저귀를 뗀 아이처럼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행동을 하는 아이가 있다. 이름을 불러도 못 들은 체 하고 본인 하고 싶은 활동을 하는 아이. 자신의 호기심이 우선되어 앞 뒤 순서랄 거 없이 무작정 만지고 행동하고 보는 아이. 사람들이 말하는 산만한 아이도 만난다. 착석이 유지되지 않고 일단 바닥에 눕고 보거나 한 곳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아이. 혹은 ‘이거 해 보자’ 제안 하면 똑같이 반복하여 ‘이거 해 보자’말하는 아이도 있다.

‘연주해 볼까’, ‘연주해 볼까’
‘00야, 안녕’, ‘00야, 안녕’
‘이것 좀 봐봐’, ‘이것 좀 봐봐’

질문하는 이가 있으면 대답하는 이가 있다는 점이 일상일텐데 내가 만나는 아이들과는 대답보다는 내가 던진 질문이 다시 되돌아 온다. 너무 투명하게 반영되어서 나의 부끄럽고 거짓된 부분까지도 들킬까 내심 흠칫 놀라는 지점. 아이들은 사랑스럽다. 그리고, 맑다. 어른이 되어 있는 나는 부족하고 때론 과장되고 혹은 합리화하기도 한다. 내가 나에게도 부끄러울 그림자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되지는 않을까, 혹여나 때 묻지는 않을까 거울 닦듯이 아이들을 들여다 보곤 한다.

일일이 체크해 보지는 않지만 우리집 남매와 나이가 비슷하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평균이라는 범주보다 늦은 발달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둔다. 어떤 부분에서 지연이 되고 있는지 무엇이 더 시급하게 발달해야 하는 지 꼼꼼히 챙겨보지만 나이도 발달 과정이라는 것도 지금, 여기에서 무엇이 중한지를 묻는 중요한 질문이 된다. 평균이라는 지점이 과연 정답이 될까. 목표 지점이라는 게 과연 누구의 기준으로 만든 지점인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지만 시험지처럼 점수 매기는 과정은 누구를 위해서인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나의 잣대가 구속하고 규정짓는 행위가 되지 않도록 쓰고 수정하고 다듬고 매만진다.

또래보다 평균적으로 느리다고 해서 그게 잘못된 건 아닐 거다. 지금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시작해 점차 범위를 늘려가는 것이 조금은 더 미래적이다. 언어와 신체적인 균형과, 나와 너를 인식하고 대화하는 상호작용과 더불어 자신 스스로 챙길 수 있는 자아 인식까지. 자신을 인식하고 챙기고 미래를 그리는 노력과 과정에서 아이는 스스로 배울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는 그저 도울 뿐, 해 나가는 일은 아이들 각자의 몫이다. 생명력은 누구에게나 이미 내재되어 있어 자랄 수 있는 힘이 모두에게 있다고 믿는다. 당장에 읽고 시험보고 점수 매겨지는 결과가 아니라 그 아이만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다.

다만 염려스러운 점은 기다려주고 함께 해 주는 이가 과연 아이 인생에 몇이나 될까, 편견 없이 이 모습 그대로도 좋다고 해 주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점이다. 걱정스럽고 두려울테지만 자라나는 길에 자양분이 되고 거름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을 표현해야지. 내가 할 수 있는 진심이 이거 밖에 없어서 안타깝지만 이거라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이 앞에 선다.

내 아이가 귀하면 남의 아이도 귀하다는 명제를 가치로 삼는다. 내 아이가 사랑스러운 만큼 내가 만나는 아이들도 사랑스럽다. 각자의 고유한 아이의 내면에는 가 닿지 못할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고 만들어가야 할 미래가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챙길 수는 없겠지만 자그마한 지식과 함께 하는 소통으로 아이 인생의 한 부분에 빛이나마 되어 주었음 하는 경이로움으로 아이들과 만난다.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中 202p.

물론 이런 일을 가능케 하는 것이 음악만은 아니다. 노인들을 격려하고 관심을 보여주며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노인들의 반응을 보고 시뻐하는 음악가들 역시 큰 몫을 한다. … 이런 만남은 모든 이들에게 생기를 불어놓고 모든 이들을 변화시킨다. …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는 이런 현상을 공명resonance이라 일컫는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전공하고 일할 당시만 해도 치료목적이 먼저였다. 준비해 간 세션이 내담자들에게 잘 되느냐, 안 되느냐가 먼저였고 내가 세운 목적에 따라주느냐 따라주지 않느냐가 보였다. 함께 해 주는 사람들의 반응이 잘 나오면 내가 준비를 잘 해서 인 듯 했고 그것으로 유능감을 느꼈던 아둔한 시절. 부끄럽게도 당시 나의 세션에 함께 해 주는 대상을 염두에 두었으나 보이지 않았다. 과연 저 분들이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가능할까, 정해진 목표에 닿을 수는 있을까, 등등. 내가 먼저였고 준비해간 순서가 우선되었고 잘 치뤄지고 아니고에 초점이 맞춰진, 지극히 ‘나 중심적’인 상태의 세션이었다.

 

육아로 인해 공백을 깨고 다시 임상에 섰다. 예전처럼 장애아동을 만나고 소통이 어려운 사람을 만나는데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 그들이 가졌다는 장애는 보이지 않고 오직 음악 시간을 통해 만나는 너와 나의 연결과 공간과 시간만이 존재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점부터 시작해 한 단계씩 오를 수 있겠다 싶은 가능성부터 보였다. 내 말이 들리면서도 들리지 않는 듯 행동하는 장애아동들과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을 장착했고 웃음과 울음에 함께 웃고 울었다. 지금의 모습이 전부가 아닌 그저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삶에 극히 일부분을 함께 하고 있다는 찰나의 순간을 공유한다.

 

비포 애프터도 아니고 내담자를 만나는 나의 자세와 마음가짐이 왜 이렇게 풍경이 달라졌을까. 육아란 그저 아이를 키우는 노동이라고만 여겼다. 자식의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재우고 먹이는 단순 노동의 순간에서 어서 벗어날 날만을 기다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돌봄과 애씀과 노력이 쌓이고 쌓여 돌도 씹어먹을 내공으로 장착했다면 육아도 이력서에 쓸 수 있을까. 내 자식이 귀한 만큼 남의 자식 귀한 줄도 알겠고 쓰디쓴 내면의 들여다봄으로 인해 자신을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계기가 육아였음을, 아이들과 함께 한 모든 경험이 자양분으로 녹아 들어 일에서도 의미 있는 가치의 토대가 되어주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아이를 낳고 육아의 과정을 견디며 나는 경력이 단절되었을지 모르나 필수인 저 덕목들이 체화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음악치료사라면 출중한 악기 실력과 음악적 소양과 예술적 센스는 기본일거다. 더불어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인류애. 신체와 마음, 사고에 대한 공부도 필수일거고.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고 바라볼 수 있는 용기와 내면에 대한 분석과 자기 공부까지. 언제나 배우려는 자세와 노력하려는 태도도 함께 라면 더없이 좋겠다. 거기에 나의 자그마한 의견을 덧붙이자면 사랑과, 생기, 온기와 조화, 더불어 성장하려는 자세와 이타심이 필수다. 어쨌든 치료사와 내담자로 만난다지만 결국은 너와 나의 공명이고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에 함께 하기 때문이다. 우린 그저 같은 목적을 가지고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다.

나는 그저 도울 뿐

2021. 5. 12.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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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2021. 5. 7.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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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2021. 5. 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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