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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cosystem/꿈꾸는 맘'에 해당되는 글 46

  1. 2021.12.14 루소처럼 걷는 법
  2. 2021.10.05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3. 2021.08.22 아주 작은 습관의 힘
  4. 2021.03.28 그냥, 사람. 홍은전
  5. 2021.02.09 돈이란 무엇인가?
  6. 2021.02.09 영화 ‘국가부도의 날’
  7. 2021.02.01 미라클 모닝의 쓸모있음
  8. 2020.11.29 희망의 밥상, 제인구달

루소처럼 걷는 법

2021. 12. 14. 07:23 | Posted by Musicpin

나에게 걷기란, 새삼스러움이었다. 굳이 집에 다시 돌아올 거 왜 신발을 신고 나가야 할까 싶은, 혹은 목적 없이 이리저리 걷는 게 무슨 이득일까의 범주였다. 할일 없이 그냥 서성인다의 인식이 어쩌면 내가 가졌던 걷기에 대한 인식이다. 아마 최초로 운동의 필요성에 의해 걸었던 지점은 첫째 아이 임신하고 나서인 것 같다. 임신 6개월을 넘어서며 배가 슬슬 나오기 시작할 때, 8개월이 지나면서는 안전한? 출산을 위해 트랙을 걸었다. 순산을 위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고 많이 걸을수록 좋다는 말이 나를 움직이게 한 것 같다. 어쩌면 출산의 공포와 아픔을 좀 완화해 보고자 스스로 움직였던 최초의 경험이지 싶다.

 

82p. 태초에는 발이 있었다. … 본질적으로 걷기는 개인적인 행위다. 우리는 혼자서, 자기 자신을 위해 걷는다. 자유는 걷기의 본질이다.

88p. 이제 우리는 루소가 왜 걸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걷는 데에는 인류 문명의 인위적 요소가 전혀 필요치 않다. 가축도, 사륜마차도, 길도 필요 없다. 산책자는 자유롭고,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다. 순수한 자기 사랑이다.

 

자유와 자기사랑이라……. 나를 끔찍이 ‘생각’하기는 하지만 숨쉬듯 나를 사랑한다고 ‘느낀’ 적이 있었던가. 자신을 보살피고 돌보고 건강을 관리한다는 측면에서의 자기 사랑은……. 생소하다. “걷기는 자극과 휴식, 노력과 게으름 사이의 정확한 균형을 제공한다.” 혹은 “철학보다 몸에 더 많은 지혜가 있다” 등의 문구는 나에게 신선함이자 새삼스러움으로 다가온다. 몸이 익히는 것은 잊혀지지 않는 체험적 경험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뚜렷한 동기가 없으면 걸을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내가 몸이 체험하며 체득한다는 문장에 공감이 되는 나이가 되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는 변화의 흐름 속에 있다”는 루소의 말에 같은 움직임이나 달라진 내면의 이미지가 겹친다. ‘아무 목적 없이 걷는 것’. ‘그냥 무조건 걷는 것’ 의 의미는 순간에 머무르고 채우고 비운다는 지혜를 가까이 하게 한다.

 

올 해 가장 커다란 일상의 리모델링은 단연 걷기다. 어느 날 문득, 가만히 앉아서 책을 들여다 보는 나에게 시작된 변화로 걷기 시작했다. 아무 목적 없이 그냥. 혹은 건강에 좋다니까. 마코 모임에서 걷기의 이점이 이슈가 되기도 했다. 가만 보니 운이 좋게도 아파트 단지 후문을 벗어나면 바로 자전거 도로이자 산책로가 나온다. ‘마음 먹기’만 한다면 곧장 걸을 수 있을 터였다. 해서 그냥 훌쩍. 걸었다. 처음엔 15분, 20분. 그러다가 40분, 50분을 걸었다. 더해서 남편과 함께 걸을 때면 1시간이 훌쩍 넘게 걷기도 했다. 걸을수록 만족감이 높아지는 경이로운 경험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이런 거였구나’체감한다.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만족감과 무언의 감동감이다.

 

무조건 빨리 걷는 것이 아니다. 목적에 닿기만 하는 지점이 아니다. 걸을 때 쿵쾅대는 심장의 느낌, 내 발에 느껴지는 감각, 뻗고 접을 때의 신체 움직임, 앞 뒤로 휘젓거나 좌우로 뻗을 때 팔의 적당한 긴장감, 아무 생각 없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담고 비우며 담고 비우는 단순한 반복. 희한하게 목적 없이 걷는 반복되는 움직임이 감정에는 충만감으로 밀려온다.

 

100p. 유대교 신학자 아브라함 헤셸은 유대교의 안식일을 “시간 속의 성전”이라고 표현했다. 걷기는 움직임 속의 성전이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느껴지는 평화가 우리에게 달라붙어 함께 움직인다. 휴대 가능한 평온함이다.

 

몸짓Motion이 감정Emotion을 만든다고 했던가. 움직임이 가져다 주는 충만감이자 안정감, 혹은 평온함이 어쩌면 저자가 표현했듯 움직임 속의 성전 아닐까 고개를 끄덕인다. 걸음을 걷는 날과 아닌 날의 차이는 머리가 아닌 몸이 느낀다. 심장이 알아챈다. 그리고는 걷기 안에 깃든 지혜를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그래,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거지, 뭐. 하루가 모여 일년이 되고 삶이 되듯이 시작은 한 걸음씩 내딛는 걸 거야. 어떤 길을 걷더라도 나는 그냥 이렇게 묵묵히 걸어야겠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적당하게, 꾸준히, 한 걸음씩.’ 나의 속도에 발 맞춰 걷는 것. 내 인생의 속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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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

2021. 10. 5. 06:53 | Posted by Musicpin

신이 아닌 이상 사람이라면 모두 나이가 든다. 나도 늙어갈거고 언젠가는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나의 몸을 인식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피하려 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반갑지만도 않은 시간이 점차 다가온다. ‘노년의 나’는 그때(나이듦)이기에 겪을지도 모를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의 추천서라고 할 수 있겠다.

 

사고가 이끄는 길, 느낌이 흐르는 길의 토대가 되는 몸과 몸에 흐르는 시간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늙고 아프면 누가 나를 돌봐줄 것인가? 나이듦의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직면해야 할 때다.

 

세 시의 몸들이라. 몸이라 할 때면 처음으로 나의 몸을 진지하게 인식했던 때가 떠오른다. 간염으로 입원했던 일주일의 짧은 시간. 매만져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던 그 때. 병실 왼쪽 벽에는 손바닥만한 시계가 걸려 있었다. 손쓰지 못하는 통증에 속절없이, 어서 시간만 흐르기를 간절히 바라던 눈길이 머무는 지점. 시계 안 초침과 분침이다. 새벽임에도 병실 밖은 분주하고 간병하는 남편은 간이 침대에서 쪽잠을 잘 때. 깨우기 미안해 고스란히 아픔을 홀로 감당할 때 통증보다도 마음의 외로움이 스스로를 더 적막하게 했던 것 같다.

 

‘새벽 세 시’ 첫 이미지는 누구나 자는 시간에 깨어 있을 누군가이고, 그러자면 홀로 깨어나 버티는 시간인데, ‘몸들에게’라니, 그 안에서 엎치락 뒤치락 관계성이 피어난다면 그건 무슨 색을 띌까 싶었다. 모르긴 몰라도 함께 있음에도 각각 주어진 역할에 홀로 버티는 시간을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라 표현한 건 아닐까. 함께 함에도 혼자 라는 쓸쓸함이 비치는 제목이다.

 

질병, 고통, 아픔에는 나이가 없다. 아주 어린, 심지어 태내에서도 아픈 아이들부터 나이가 들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짙은 어두움의 그림자는 가깝게 서려있다. 다만 인식하지 못하거나 안 할 뿐. ‘생애문화연구소(기획)’이라더니 나이/듦, 질병, 노년, 세대, 시간, 죽음을 인간의 생애시기마다 ‘문제화’하고 ‘의제화’하려는 노력이 목차에 담겼다.

 

‘돌보고 돌봄 받는 것’에 시선을 붙들고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의 자리, 환자가 만나는 통증과 고통을 책에서 근거와 위로를 찾고, 젊은 아픔에서부터 치매까지 인간의 생애 여기저기서 아픈 소리를 낸다는 것을 생애 별로 정리해 놓은 듯 하다. 젊어서 아픈 것도 서럽고 늙은이 치매 걸린 취급도 언짢다. 나이/듦, 질병, 노년, 세대, 시간, 죽음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듯이 목차에서도 여기저기 시간을 노니는 몸들의 인생을 담은 것 같다.  

 

 


 사람의 몸, 신체를 표현할 때 보통 질그릇, 찰흙과 같은 단어에 담곤 하는데 이 책의 표지가 마침 그것을 내포하는 듯 하다. 몸뚱이, 마음을 담는 그릇 등. 찰흙의 질감에 표현된 신체가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혹은 서로 기대고 혹은 무릎을 꿇었다. 함께 하는 듯 하지만 누군가는 들여다보는 듯 하고 좌절감이 그려지지만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형태가 무게감을 더하고 어떤 마음의 상태, 정신의 에너지가 자유롭지 못해 이고 지는 듯한 묵직함이 느껴진다.지금 아픈 이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이들, 나이 들어가며 혹은 나이 들어가는 가까운 이를 보며 불안하고 겁나는 이들, 자신이 지나온 악몽 같은 시간을 삶의 일부로 끌어안으려 애쓰는 이들에게 이 책이 약상자였으면 한다. … 또한 이 책이 공구상자였으면 한다. 사람들이 좀 더 ‘쉽게’아프고 늙을 수 있는 사회, 정의로우며 심지어 기쁜 돌봄이 있는 사회라는 이상을 현실로 당겨오는 데 쓰일 도구를 담고 있었으면 한다. 우리를 낫게 할 말, 동시에 사회를 부수고 다시 지을 말을 만들고 싶다는 터무니없이 큰 욕심에서 조금이라도 선한 것이 탄생했길 간절히 바란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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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습관의 힘

2021. 8. 22.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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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사람. 홍은전

2021. 3. 28. 20:21 | Posted by Musicpin
그냥, 사람


세월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32p. 아무도 죽이지 않았는데 모두가 죽은 것처럼 누구도 지우지 않았는데 도처에서 사라지는 세월호

43p. 각각의 운명으로 달려간 듯 보였던 그 죽음들을 하나하나 연결해나가자 그것이 ‘헬조선’의 통계들과 무섭도록 일치했다는 것. … 그들이 새로 난 고속도로에서 무참히 차에 치여 죽는 고라니들처럼 이 폭주하는 사회의 희생양들임을 깨달았다.

97p. 적은 어디에나 있지만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바로 ‘이웃’, ‘피로감, 혐오시설, 주민재산권 침해’,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할 이웃이기에, 대신 떡을 해서 주민들을 찾아간다.

 

‘안산 쓰레기 동네에 어차피 쓰레기 될 애들’

하지 않는 게 좋았지만 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걸 잘 아는 얼굴.

잊을만하던 때가 오는 건 직접 겪지 않았기에 그렇다. 타인의 일이 내 일이 될 수도, 내 일이 곧 내 지인의 일이 될 수도 있는 확률의 게임. 단지 나는 저.런. 일 겪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하는 마음이 부끄럽다. 모두 지난 일이 되고 이젠 덮고 싶은 일이, 누구는 덮고 싶으면 덮을 수 있는 일이 당사자들에게는 덮을 수 없고 감을 수 없으니 이를 어찌 할까. 위로도 마뜩잖고 고개를 주억거림도 부끄러우니 진정한 위로와 공감은 뭘까.

 

자식의 유골을 업고 떡을 돌리는 어미의 마음을 감히 안다고 이해한다고 말이나 꺼낼 수 있을까. 남의 아픔이 내 것이 아니라고 천대할 수 있는 이들의 무지함에 나는 감히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옆에 있으면 묻을까 혹여나 나에게 나쁜 운이 닿지나 않을까 피하게 되는 비겁함에 인간이라는 이기심이 나에게도 심어져 있을지 모를 찜찜함에 몸서리친다.

 

도라지, 백두산, 민주화 들. 박원순 표 매연 굴뚝 등 사회적 참사.

95p. 재난이 나에게 말했다. 피해 입은 자가 아니라면 누가,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싸움을 시작할 것인가. … 화재는 우연이지만 참사는 필연… 몇 명의 현장 종사자들만 처벌되었을 뿐, 이 모든 참사를 설계한 진짜 책임자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 백방으로 뛰던 유가족은 끝이 보이지 않는 부패의 사슬 앞에 끝내 주저앉았다.

113p. 경찰과 공무원이 빈민을 상대로 자행한 국가폭력, 선감학원. 가해자인 경기도는 관련 서류가 남아 있지 않다며 시치미.

 

흔히 권력 있고 돈 있고 나랏일을 한다는 그들만의 리그에 일반인이, 아니 가녀린 생명을 지고 사는 사람이 ‘여기 있어요’ 손들어도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이가 되는 세상. 모르면 당하고 알고도 코 베가는 그들만의 리그. 약한 목숨이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도 사람들은 아등바등 위로 올라가기 위해 옆 사람을 밟고 올라서기 바쁜가 보다.

 

새 권력이 추구하는 바가 누구를 위한 건지도 모르고 내가 모르는 새 자행된다는 게 마음 아프다. 이 나라에 내는 나의 세금의 쓰임새가 불분명하게 누군가의 권력으로 명예로 쓰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찜찜하다. 누구를 위한 법이고 법칙인가. 내가 누리는 것들이 혹은 내가 피땀을 흘려 노력한 흔적이 정부는 이길 수 없다는 체념과 패배감으로 무너져 내리면 어쩌지 겁도 난다.

 

141p. “그럼 아이들은 어디서 뛰어놀죠? 그 작은 땅마저 꼭 빼앗아야 하나요? 축구장은 남자들만 좋은 공간이잖아요.”

당당하게 말하고 도전하고 싸울 수 있는 힘도 역시 우리에게서 나온다는 희망을 본다, 감히 용기내어 따져 물을 수는 없지만, 그래서 저들의 용기 있는 말과 당당함이 가슴 저리게 부럽지만 나도 함께 할 수 있는, 도움이 될 수 있는 힘이 있을 수 있다는 건 분명하다. 잊지 않고 지워버리지 않고 불합리함에는 끝까지 깨어 있도록 하리라, 자극도 받는다.

 

 

그냥, 사람, 장애인 운동이란,

36p. 갇힌 이들은 고통을 덜었을 것이나 가둔 사람들의 평화는 깨어진 것, 오래 전에 깨어지는 게 더 좋았을 ‘우리들의 평화’

44p.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대는 그 순간에도 자신들의 목숨이 이 고라니 같은 존재들에 의해 얼마간 연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탈시설-자립생활, 장애등급제ㆍ부양의무제, 2001년 ‘이동권을 보장하라’ 2007년 ‘사람답게 살고 싶다’ 2009년 ‘탈시설 권리’ 그들을 위한 활동지원 제도, ‘우수 시설’로 선정된 희망원. 문이 열렸음에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 대한민국 최고의 버스와 장애인은 탑승할 수 없는 버스, 기초생활보장법-자신의 작은 꿈을 이루기 위해선 이 사회가 통째로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았던 사람, 최옥란. 변한 건 송국현의 장애가 아니라 그가 속한 사회의 환경, 보이지 않는 거대한 유령인 장애등급제, 시설에 들어가던 예산을 거주인들의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에 써야 한다는 것을 깊이 공감한다.

 

79p. 이 세상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들, 속도를 낮추고 상처를 돌보았어야 한다. 상처 난 곳으로 온갖 악한 것들이 꿀처럼 스며드는 법이다. 약자가 없어야 강자가 없다.

 

같은 목숨이라는 걸 잊는다. 너와 나의 느낌이 비슷하고 먹고 자고 싸고 하루를 살아가는 게 같은 사람이라는 걸. 쓸모 없는 존재가 아닌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귀한 생명이라는 것을. 센터에서 장애 아이들을 만나면서도 장애에 등급제가 있어 바우처의 지원 금액이 다 다르다는 걸, 이 책을 읽고서야 장애가 동물처럼 등급이 메겨져 있었다는 걸 깨치고는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어떤 이는 기를 쓰고서라도 장애가 아니기 위해 많은 돈을 현금으로 ‘일반’결제 하는 것임을, 이제야 이해했다.

 

매일 만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자신의 좋고 싫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어렵고 쉽고를 분간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여느 아이들 못지 않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현실적인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아 잠시나마 울적했다. 그나마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자상하지 않더라도 챙겨주는 부모가 있고 생활보조 서비스 선생님 도움을 받아 여러 수업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의 정도가 조금 더 있는 중증 장애인 아이들은 잘 볼 수 없고 만나기 어렵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아마도 어딘가에 살아있지만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사각지대 밖, 숨소리초자 들리지 않는 그곳에서 혼자 외로이 ‘쓸모 없는’ 생명으로 천시를 받고 있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웠다.

 

돈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없고에 따라 대접도 다른, 혹여나 자신의 아이가 수업 하나라도 빠지게 될까 센터에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부모의 심정, 동네의 흔한 유치원은 그림의 떡, 일반 초등학교에 보냈지만 특수학급에만 보내지는 현실(109p.), 장애는 죄가 아니라 그저 약할 뿐이라는 걸, 일일이 찾아 다니며 무릎을 꿇어야만 하는 현실 앞에 엄마는 얼마나 매번 무너져 내렸을까.

 

법과 제도가 확장되었어도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은 여전히 그때의 저열함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는 말에 마음이 아프다. 어쩌면 현장의 일부분에서 일하고 있는 나조차 진정 움직일 수 없는 자들의 털끝도 볼 수 없는 건 아닐까 의구심도 든다. 내가 본 현장은 아이들에 불구하지만 이 아이들이 나아가야 할 미래는 닿지 못하는 어딘가에 표류하게 될 지는 않을지 심난하다.

 

도미니언

오직 살찌는 기계로 산 돼지, 자식을 빼앗기는 소,

“우리는 소, 돼지가 아니다. 장애인도 인간이다.” 오랜 슬로건에서 짐승이란 권리 없는 존재였고, 인권은 항상 그들을 딛고 올라서는 것이었다(231p.)는 책의 기록에 감히 나라고 다를 게 무언가 비겁함에 입이 바짝 말랐다. 내가 먹었던 돼지와 소와, 동물원에서 봤던 원숭이들과 오랑우탄, 범고래, 그리고 곰. 쇠로 된 방, 그리고 그것들의 끝없는 도열. 그 안에서 가슴에 반달을 가진 곰들이 격투기 하듯 철창을 들이받으며 울부짖는다니, 도미니언 영상을 접한 나로서는 당시의 충격과 생생함이 고스란히 느껴져 소름이 끼쳤다. 인간이라는 짐승이 두뇌가 더 크고 강하다 하여 그들에게 취하는 행동에 속이 메스꺼웠다. 나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이 동물들에게 자행되는 패륜에 일조하는 것만 같아 죄책감이 인다.

 

255p. 글쓰기 선생님은 좋은 글을 쓰려면 오감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냄새와 촉감,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모두를 잘 쓸 줄 알아야 한다고. 나는 그것이 언제나 힘들다고 느꼈는데, 이제야 그 이유가 쓰기 능력의 부족이 아니라 감각 능력의 부족이었음을 알겠다. 선생님이 나에게 쓰라고 한 것이 ‘글’이 아니라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맞는 ‘감각’ 그 자체였다는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p.25p. 글쓰기는 언제나 두려운 일이지만 내가 쓴 글이 나를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줄 거라는 기대 때문에 계속 쓸 수 있었다…화살표 같은 존재들…말하자면 우주와 맞서는 일…글이라는 현장

 

따져 묻거나 감히 용기나 나지 않을 때 글은 말보다 강할 수 있다는 걸 이 책은 증명한다. ‘언어의 수용소’가 있다면 필시 갇히고야 말았을 ‘추하고 열등하고 쓸모 없는’ 말들이 해방되는 자유함을 조금이나마 열어 보일 수 있는 공간. 글은 힘 없는 자에게 힘이 되어 주고 말 못하는 자의 언어가 되어주며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조금이나마 쓸모가 되어주는 작지만 큰 힘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실감한다. 아무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 드는 안타까움을 지면을 통해서나마 기억하고 사진을 통해서나마 떠올리고 (책에서 소개되는)다큐에서나마 그들을 기릴 수 있다면, 발가락의 발톱만큼은 함께 하고 있는 거라 위안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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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란 무엇인가?

2021. 2. 9. 08:29 | Posted by Musicpin

나에게 돈이란, 꿈이자 공부이며, 삶이자, 철학이다.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마음가짐도 천차만별이고 감정 역시 든든했다 가난했다를 반복한다. 나에게 돈은 하고자 하는 의지의 장작과 같다. 활활 타올라 꿈으로 한 발짝 다가가게 하는 연료다. 돈이야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만 돈이 없을 때는 거두어들일 곡식이 없는 빈곤한 농부처럼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다. 돈에 대한 목마름은, 모자라고 부족한 마음에 타인의 환경과 비교하게 되는 가난한 마음의 시작이다.

 

돈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 권리를 쥐고 있다. 돈이 있고 없고에 따라 계급이 나뉘고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지며 나에 대한 인식이 판가름 난다. 돈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사는 곳의 평수가 나뉘고 들이는 가구의 결이 달라진다. 돈을 사용함으로써 먹거리의 가치가 달라지고 삶의 질이 높아지며 누리는 특권 또한 넓고 풍부해진다. 누릴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그 자체가 자신의 능력이자 힘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때론 돈의 여부에 따라 꿈의 크기도 달라진다.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가 가진 돈의 여부에 따라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고 어쩌면 돈이 없어서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돈이 너무 많아서 딸 수 있는 자격증의 갯수도 얼마나 천차만별인가. 떠날 수 있는 여행의 거리도, 여행 장소의 가짓수도 천차만별이다. 돈이란 때로 자유를 포함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떠날 수 있을 때 언제든지 일어나 다녀올 수 있기에 능력의 최대치를 장착하는 도구가 되어 주는 게 아닐까.

 

다만, 돈의 사용과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의미하는 바가 다르다. 돈이라는 건 물질이기에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유동성이 있다. 다큐에서 보여진 다수의 연구에서 부자들의 생각 능력이 협소하고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는 흥미롭다. 돈이 많을 뿐인데 자기 합리화, 확증편향, CEO 갑질 등 타인에 대한 사고가 마비되어 공감하지 못한다니 위험하지 않은가. 뉴스에서 간혹 보이던 갑질이나 이해되지 않는 행동이 달리 보면 공감하지 못해 이루어진 사건들임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웃프다.

 

『다큐 中 ‘미주신경’ –타인에 대한 이해 돕는 부분.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공감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이 꺼지는 것.

자기 기준에서만 생각하고 나를 만족시키는 것에만 집중.

자신의 이익만을 중요시하게 되면서 그 사람을 충동적으로 만든다.

공감 능력 저하, 이기주의, 충동적 행동 이런 것들이 겹치면 문제는 더 심각』

 

돈은 우리 삶에 필요하지만 많이 가질수록 공감 세포가 줄어든다는 것은 주목할 이야기다. 많이 가질수록 나눔에 대한 마음도 커질 것만 같았는데 정반대라니, 아이러니다. 가난할수록 타인의 고통이 더 와 닿고 돈이 많을수록 자신을 더 높이는 데만 급급하게 된다니, 인간답게 산다는 건 뭘까 생각하게 된다.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건 인간답게 살고 싶은 욕망이 제일 일 순위다. 배우고 싶은 공부를 계속하고 망설이지 않고 취미 생활을 영위하며 아이들 공부와 하고 싶은 일을 만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하게 해 주며 남편의 취미생활을 존중할 수 있는 여유다. 사고 싶은 것을 살 수 있고 언제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 함이자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안전의 의미까지 내포한다.

 

이왕 버는 거 더 벌 수 있다면 주변의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펼칠 수 있는 돌봄의 몫까지 해내는 능력이라면 얼마나 보람될까 생각한다. 벌수록 좁아지는 안목이 아니라 나의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사회로의 환원까지 진정한 벌이의 목적이다. 돈은 나 혼자 버는 것이 아니다. 물론 나의 노력이 값진 보상으로 이어져 수입과 연결된다지만 필요로 하는 사람과의 소통과 관계에서 완성되는 것이 진정한 보상이라 생각한다. 물질은 사라지지만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버는 수입은 제공하는 사람과 제공받는 사람과의 소통의 결과이며 다시 환원시킬 수 있는 선한 흐름의 연결이 완성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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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부도의 날’

2021. 2. 9. 07:52 | Posted by Musicpin

국가 외환 위기 당시 상황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나 사실 그대로 담고 있어서 한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 나라의 위급상황을 앞두고 대처하는 방법이 이렇게도 다를까. 누군가에게는 개인의 이기심과 권력과 탐욕으로, 누군가에게는 사람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누군가에게는 일상을 지켜야 하는 간절함으로 그려냈다.

 

국민이 알지 못하게 끝까지 쉬쉬해대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이 짜이게끔 유도하고 국민의 어려운 상황을 고민하지 않은 채 일말의 고민도 없이 국제통화기금(IMF)의 돈을 빌리자는 차관(조우진),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으로 닥칠 위기를 예상하고 대안을 제시하지만 더 높은 권력에 의해 짓밟히는 한시현(김혜수), 남들은 어음이다 보증이다 해서 아파트를 내놓고 궁지에 몰려 허우적대는 사이, 홀로 깨어있어 IMF로 인해 부자가 된 윤정학(유아인), 괜찮다고, 우리 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떠드는 뉴스만 보고 믿는 아무것도 모르는 갑수(허준호)

 

외환위기. 말 그대로 돈으로 인해 겪는 나라 부도 사태. 모두에게 닥칠 위기의 상황을 이용하려는 자와,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자, 아무것도 모르는 자, 빠른 눈치로 자신만은 살아 남은 자로 그려진 모습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려보게 된다.

 

돈이라는 것 역시, 개인적으로 쓰느냐, 다수를 위해 쓰이느냐의 목적에 따라 의미는 확연히 달라짐에 주목해야 한다. 돈이 없으면 개인으로서 존엄성도 존중 받지 못하지만 돈이 없으면 결국 나라도 힘을 행사하지 못한다. 개인의 가난은 나라의 가난과도 연결된다. 영화에서 보여지듯, 나라가 부도 위기를 겪고 있을 때 권력 있는 미국의 차관이 계약 조건을 좌지우지 뒤흔들지 않던가. 한 마디 말도 못하던 우리 나라의 정권은 과연 누구를 위해 일을 하고 있었던 걸까.

 

국가가 있는 건 국민의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이루는 집단이고 한 사람의 가치와 존엄성이 곧 나라의 가치와 존엄성이 되는 그런 바람직한 현상을 기대해 볼 수는 없나? 개인의 이익으로 나라를 이 지경에 빠뜨렸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을 살리고자 개인들이 금 모으기 운동으로 회생시켰다는 건 우리나라 국민의 근성이 뛰어나다고 해야 하는 건지, 나라를 살리고자 하는 애국심이 뛰어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정작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들은 자기 밥그릇만 챙기는 데 우리 국민은 개인만 살아남기 위해 급급하지 않고 한 마음으로 나라 살리고자 금을 모았다. 씁쓸하고 안타까운 현상이 못내 아쉽지만 그런 국민의 한 마음 된 노력이 있었기에 빠른 시기 내에 더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자부심도 갖는다. 다만 같은 일을 반복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남들 다 위기로 자살이다 부도다 힘들 때 혼자서 부자가 된 윤정학(유아인)이 밤거리를 걸으며 웃다 우는 감정은 뭐라 표현할까. 웃지도 울지도 못할 상황에서 윤정학(유아인)은 어떤 생각이 들고 감정에 교차했을까. 아무리 벼락처럼 부자가 되었다고 해도 나라가 부도 상태인 건 바라지 않았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김혜수님의 한시현 역은 굉장히 깨어있는 여성이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정치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도 깨닫는다. 모르고 당했던 당시의 국민처럼 되지 않으려면 소수 개개인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 결국엔 ‘깨어 있어야’ 한다. 또한 면접을 보러 가는 아들에게 갑수(허준호)가 전한 ‘아무도 믿지 마, 누구도 믿지 마, 오직 너는 너만 믿어.’ 말이 주는 의미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스스로 깨어있어야 하고 누구도 믿지 않아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듯이 눈앞의 것만 대처하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한 공부도 필수다.

 

신문 스크랩하다가 발견한 글. (매일 신문 中. 허연의 책과 지성 중.)

에밀 졸라(1840~1902), 대형은행 도산 목격 후 ‘돈’이라는 소설에서 그는 말한다.

“돈을 공격하지도 옹호하지도 말 것. 돈의 세기라고 불리는 우리의 세기와 명예의 세기라고 불리는 옛 세기를 대립시키지 말 것. 많은 사람에게 돈이 품격 있는 삶을 보장함을 보여줄 것. 돈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한다. 돈은 위생이요, 청결이요, 건강이요, 심지어 지성이다.”

 

졸라는 위니옹 제네랄 의 파산을 보며 문제의 원인은

‘돈’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음을 절감했던 것이다

 

“돈은 죄가 없어. 문제는 ‘돈’이 아니라 ‘인간’이야”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돈을 쓰는 건 나지만 나의 그릇이 어떤 상태이냐에 따라 값어치는 천차만별이다. 나의 그릇에 따라 담기는 돈의 분위기는 달라질거다. 그럼으로 나는 큰 돈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더라도 어떻게 쓸지 고민하고 공부하는, 깨어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선한 영향력으로 선순환이 되는 돈의 지점에 내가 서 있기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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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클 모닝의 쓸모있음

2021. 2. 1. 05:58 | Posted by Musicpin

몇 날은 빨리 일어나기도 했고 몇 날은 몸이 이끄는 대로 더 잠을 자기도 했다. 그러면서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각들을 발견했다.

 

새벽기상을 한 날.

잠에서 쉽게 깨어나기 어렵고 눈꺼풀이 무겁다. 쉬 잠에서 깨지 않아 다시 눕고 싶은 유혹이 든다. 그렇지만 얼른 양치를 하고 세수를 하고 나면 졸음은 달아난다. 몸을 움직이면서 개운함을 만끽한다. 해야 할 목표를 다 해 놨을 때의 만족감이란, 직접 해 보지 않고는 경험하지 못할 성취감이다. 개운함과 성취감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상태는 상쾌함을 준다.

 

새벽기상을 못한 날.

하루를 분주하게 시작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했다는 부채감으로 하루를 시작하느라 불안하다. 몸이 찌뿌둥하고 마음은 무겁다. 어수선하고 정신사나운 느낌으로 하루를 보낸다. 괜히 연한 짜증도 솟아나는 걸 제어하고 견디느라 하루를 허비한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함에 있어서 새벽에 만드는 일들은 내 꿈의 초석이 되어준다. 초석을 다지지 못한 날은 허망하고 허전하다. 우선 해야 할 일을 먼저 끝내놓고 하루를 시작하는 만족감은 꿀맛이다.

 

새벽기상, 미라클 모닝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았나?

82p. 수면 시간에 관한 진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의 컨디션은 수면의 양보다는 일어났을 때 컨디션이 어떨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한

‘암시’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

 

세상에. 이 페이지를 읽기 전까지 수면의 양에 따라 하루의 컨디션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잠은 전날 잠들기 전 ‘암시’에 따라 달라진 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내가 잠들기 전 어떤 생각을 품고 잠이 드느냐에 따라 다음 날 아침의 컨디션이 달라진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가. 마음만 먹으면 새벽기상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내가 어떤 마음을 먹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아침 풍경이 달라진다. 해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또한, 그것이 무엇이든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미라클 모닝이라니 안 할 이유가 없었다. 열정은 평범함이란 편안한 영역에서 벗어나 비범함의 경지로 뛰어드는 것이라니. 이 얼마나 명쾌한 말인가. 미라클 모닝을 실천할 뿐인데 원하는 꿈으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니, 너무 감동이다. 내 삶을 개선시켜야 할 ‘책임’을 지고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데 열과 성을 다하는 것. 미라클 모닝의 시작이다. 현재는 언제나 우리가 배우고,성장하고, 그 어느 때보다도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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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밥상, 제인구달

2020. 11. 29. 20:35 | Posted by Musicpin

DOMINION(지배자들) 中.

그럼에도 여전히 축산을 정당화합니다. 그게 정상이고 필요하고 자연스러운 거라면서요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우월성을 내세우며 힘과 권위, 지배를 행사할 권리를 우리의 근시안적 목적을 이루고자 열등하다 여기는 존재들에게 가합니다.

 

이는 예전부터 있었던 논리입니다. 그런 식으로 백인은 흑인을 노예로 삼고 땅과 자식들을 빼앗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나치는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남성은 여성을 침묵케 하고 억압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되풀이할 운명인 것일까요? 이런 우월감 콤플렉스, 이런 이기심에서 인간은 벗어날 수 없는 걸까요? 아니면 넘어설 수 있을까요?

 

 

이것은 공포.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생명을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숨을 쉬고 아픔을 느끼고 좋고 싫음을 아는 생명이 공장에서 물건 납품되듯 취급하는 공장식 사육이 있다는 점도 충격이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동물의 삶의 질과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전문가의 손길이 함께 하겠지, 정도. 모르고 있었고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은 죄책감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으로 아무런 죄가 없는 동물들이 희생되었다 생각하니 나의 무지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좋다고 하니 우르르 몰려가 산 동물의 고기가, 가방이, 털 달린 옷이 나에게 오기 전까지 생명이었다는 점은 소름이 끼친다. 왜 미처 몰랐을까.

 

순전히 이익과 돈 때문에 벌어지는 이 비극을 무지한 내가 돕고 있었겠다는 짐작이 괴롭다. 아무런 방어도 할 수 없고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이 무자비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이 가슴이 아프다. 돈(상품성)으로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이 결정되어 무가치하게 버려지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다.

 

먹거리가 단순 먹거리가 아닌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돌고 도는 순환의 고리 안에 있다는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싸다’는 명분 아래 온갖 화학 물질로 오염시키는 식품들을 사 먹었다. 마구잡이로 뿌려 댄 화학 약품, 제초제, 살충제, 농약 때문에 망가진 지구 환경을 감안해야 한다.

 

277p. ‘내 고장 식품 먹기’운동. 내 고장의 식품을 먹는 것이 땅을 소중히 여기고 충실하게 유기농을 실천하는 소규모의 자영 농장을 돕는 길일 뿐만 아니라 식품을 과도하게 포장하고 지나치게 먼 거리 까지 운송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도 줄일 수 있는 길이라는 것.

 

건강을 걱정하는 소비자는 내 고장에서, 자연 친화적인 농법으로 재배된 신선한 식품을 먹는 것이 기업형 농장에서 기른 식품들에서 볼 수 있는 농약 잔유물과 항생제, 성장 호르몬, 그리고 감춰진 유전자 변형 작물을 피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

 

우리집의 식탁에 올린 음식들이 과연 유기농인지, 유기농을 가장한 상품판매인지 날 서린 판단이 필요할 듯 하다. 나름대로 작은 혁명을 추구하고 나 하나의 작은 행동이 많은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유기농법으로 키우는 자연드림이나 한살림, 로컬푸드, 채식 위주 식단, 제철 음식으로 먹을거리를 채운 식단. 이것이 나의 건강뿐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 가정, 동물, 환경에 이르기까지 아우르는 길임을 인지해야 한다.

 

『방금 식사를 마친 당신은, 도축장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도살을 공모한 셈이다.』

–랠프 월도 에머슨

425p. 총체적으로 말해 변화를 이끌어 갈 원동력은 바로 우리, 평범한 대중들이다. 우리가 하는 선택(그리고 우리가 사는 것)이 차이(우리 자신의 건강과 우리 마음의 평화만이 아니라 지구의 미래를 위한)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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