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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열어 보는 악기처럼

2020. 3. 17. 05:37 | Posted by Musicpin

집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이 나왔다.

다시 열어 보는 악기처럼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새벽 기상을 했다. 하루 이틀이 갈수록 뱉어내지 못한 언어가 쌓여 가슴이 뻑뻑했다. 압력이 꽉 차 어떻게든 삐져나오는 압력 밥솥의 수증기처럼 일상이 꽉 들어차 칙칙폭폭 뿜어져 새나온다. 현재에 안주하지 못하고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나를 더욱 더 알게 되기도 한다. 현재에 안주할 수 있다면 괴롭지도 않을 텐데, 어찌하여 꿈 많은 아줌마는 쉬이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는가. 못 다한 말 들이 무에 그리 많다고.

정작 하라면 하지 못하고, 디테일하게 표현해 내지 못하는 이내 가슴이 때론 더 야속해 답답해지는 것도 있다. 벙어리 냉가슴, 나는 나인데 나로서 살지 못한다는 다그침, 도리질. 아이들이 잘 커 주고 가정적인 신랑과 함께 살자니 복이 많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꿈을 꾼다. 아직 다 펼치지 못한 내 삶이 있는 것만 같다. 무언가 해야 할 나만의 지도가 그려져 있는 것만 같다. 어딘가 가야만 하는 나만의 길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필코 걸어야만 하는 나만의 길.

이제는 그만하면 됐다고, 이쯤하면 되었다고 못 들은 척 해보고 싶지만 끊임없이 속삭이는(때로는 방망이질도), 수없이 해 대는 알 수 없는 외침. 갈팡질팡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무수한 생각들과 의견들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내 삶은 내가 챙기지 않으면 누구도 챙겨주지 않는다. 다 큰 성인이 누군가 챙겨주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성숙하지 못하다. 나를 다독거려 잘 지내보자 토닥이는 것도 순전히 내 몫이다. 해서 그냥 일어났다. 몸이 체득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지혜다. 수없이 조잘대는 생각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새벽기상만이 옳았다. 몸이 직접 움직여야지.

그리고 글쓰기. 하루에도 수 십 만 번 올라오는 생각과 사고들. 얽히고 지나간 것들의 실타래에 정리가 필요했고 그로인해 생겨나는 묵은 감정들을 털어버려야 했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글쓰기였다. 치유라는 게 결국은 소통하고 알아차린 후 변화하는 과정인데 오롯이 글쓰기 안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내가 나를 만나는 시간. 나로 살게 한다.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 아닌 생각하는 삶을 살게 하는 진리.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는 시간. 고요하게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

오랜 시간 묵혀? 두었던 악기들을 오랜만에 꺼냈다. 꿈 많은 아가씨 적에 다뤘던 나의 악기들이다. 언제나 다시 함께 해 보려나 어제나 저제나 간혹 생각했더랬다. 집에만 있는 시간이 계속 되자 답답함이 용트림을 했다. 그러다 불현 듯 기타를 꺼내어 조율을 했다. 아이들이 가만있을 리가 있나. 서로들 자기가 먼저 하겠다며 덤벼들어 손도 못 대겠기에 우쿨렐레를 각자 쥐어줬다. 불협화음이 진동을 하지만 이내 익숙한 멜로디들로 한 소리가 된다. 첫째 아이는 가장 기본인 C코드를 알려줬더니 어느 새 곰 세 마리를 연주하며 부른다. 옆에서 둘째 아이도 롤모델인 누나를 따라 제법 매끄러운 스트로크을 한다. 역시 음악은 세대를 아우른다. 더군다나 부모 자식이 함께 하는 연주라니. 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음악이 이토록 감격스러울 줄이야. 곰 세 마리 동요 한 곡이 여느 명곡 못지않다. 화려한 기교만 명곡인가. 한마음으로 아우를 수 있는 것이 진정한 명곡이지 하면서 나 홀로 뿌듯하다.

오랜만에 기타도 뚱땅거려보고 아이가 부르는 노래에 맞춰서 피아노 반주도 해 보니 메말라 바삭해진 영혼에 생기가 도는 듯하다. 자가 격리로 대한민국의 흐름을 같이 하면서 집에만 지내다 보니 새삼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 가볍게 이는 바람 한 점에도 상쾌함을 감상하게 된다. 쓰기 전에는 나갈 수 없는 것에 불평만 하다가 쓰고 난 후에는 창문만 열어도 환기가 되는 상쾌한 공기에 감사하게 되는 나를 발견한다. 나에게 좋은 것들만 주어지는 하루를 살자.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사는 하루.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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