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걷는 사람, 쓰는 사람, 하는 사람-*
Musicpin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핸드폰을 꺼내 들고 만 서른여덟의 나를 기념한다. 아가씨 적에 그리했던 것처럼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고 얼굴 근육에 별다른 변화가 없음에도 예쁜 척 한껏 표정을 지어본다. 모처럼 찍어보는 나의 표정과 얼굴이 어색하면서도 이내 마음을 가다듬는다. 지금 찍지 않으면 언제 또 찍어볼까. 기억하고 싶은 순간, 추억에 남기고 싶은 순간, 지금 나의 상황이 가장 아름답다 느껴지는 순간. 이 순간순간들이 구슬처럼 꿰어져 내 삶이 될 텐데 찍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아이를 낳고 난 후에는 아이에게 온통 플래시가 켜졌다. 꼼지락거리며 세상 전부인 양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좋아서, 지금 아니면 못 찍을 것 같아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일상이 너무나 소중해서 늘 아이에게 핸드폰을 들이댔다. 그러다 보니 예쁜 척 하는 게 재미없기도 했고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더 반짝이는 아이가 옆에 있는데 오밀조밀한 아이를 찍는 맛에 나를 찍을 생각은 안 했다. 혹은 늘어진 흰 티나 불어난 부피의 무언가가 내심 사진에는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기도 했다. 모든 부분의 곳곳이 나 인데도 못나 보이는 모습은 카메라에 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좋아 보이는 것만 나일까, 반짝반짝 할 때만 나 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줄근하고 늘어져 보이는 건 내가 아닌 걸까.남들 보기에 평범한 주부의 모습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질문했다. 내 삶에서 유일하게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 보는 순간들이 보람되고 값진 것이라면 과연 이 순간만큼 더 빛나는 순간이 있을까. 외모가 변한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이 변한 게 아닐 텐데 엄마라는 역할을 맞이한 순간부터 ‘나’가 동떨어졌다. 돌보지 못하고 지쳐 잠들던 찰나의 순간들에 나동그라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아이가 까꿍이 시절에는 나 자신을 찍어보자는 생각도 감히 못할 정도로 초보 엄마 역할에 충실했다.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는 사진을 꽤나 즐겨 찍었다. 예뻐 보이는 나를 중심으로 고르고 골랐다면 엄마가 된 후로는 예뻐 보이는 순간이 중점이 되었다. 아이들 덕분에 행복을 만끽하는 순간, 그로 인해 활짝 웃음 짓는 순간, 아이가 모유를 먹고 트림을 하는 순간, 아이가 첫걸음을 떼는 순간, ‘엄마’하고 첫 말을 떼는 순간, 둘째 아이가 태어난 순간, 첫 돌을 맞이한 순간, 어린이집에 씩씩하게 등원하던 순간,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니던 순간,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순간.

남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터졌던 플래시가 이제는 나 스스로가 기억하기 위한 플래시로 바뀌었다. 진정 살아있고 나답게 살고 있는 순간을 타인에게 아무리 열어 보인다 해도 나처럼 알 수 있을까. 매일같이 최선을 다했던 나의 모습도 담고 지금을 잘 살고 있다는 만족감도 담아 보는 게 모두 ‘나’를 기념하는 것 아닐까. 잘 찍어진 사진은 열어 보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사진첩 속에 담아 두어 추억하는 것도 모두 ‘순간’이다. 아이 사진처럼 꾸준하지는 못하더라도 간혹 나를 찍는 것이 어색하더라도 손에 핸드폰을 들고 자신을 찍어 기념해 보자. 언젠가 돌이켜 보면 ‘아, 그 때 참 좋았지, 내 생에 최고의 날이었어’ 추억할 수 있도록. 지금의 내가, 내 생의 가장 젊은 날일 오늘을 기념할 수 있도록 말이다.


오랜만에 셀카 찍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