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아닌 이상 사람이라면 모두 나이가 든다. 나도 늙어갈거고 언젠가는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나의 몸을 인식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피하려 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반갑지만도 않은 시간이 점차 다가온다. ‘노년의 나’는 그때(나이듦)이기에 겪을지도 모를 상황을 있는 그대로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의 추천서라고 할 수 있겠다.
사고가 이끄는 길, 느낌이 흐르는 길의 토대가 되는 몸과 몸에 흐르는 시간을 나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늙고 아프면 누가 나를 돌봐줄 것인가? 나이듦의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도 겪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직면해야 할 때다.
세 시의 몸들이라. 몸이라 할 때면 처음으로 나의 몸을 진지하게 인식했던 때가 떠오른다. 간염으로 입원했던 일주일의 짧은 시간. 매만져도 통증이 가시지 않았던 그 때. 병실 왼쪽 벽에는 손바닥만한 시계가 걸려 있었다. 손쓰지 못하는 통증에 속절없이, 어서 시간만 흐르기를 간절히 바라던 눈길이 머무는 지점. 시계 안 초침과 분침이다. 새벽임에도 병실 밖은 분주하고 간병하는 남편은 간이 침대에서 쪽잠을 잘 때. 깨우기 미안해 고스란히 아픔을 홀로 감당할 때 통증보다도 마음의 외로움이 스스로를 더 적막하게 했던 것 같다.
‘새벽 세 시’ 첫 이미지는 누구나 자는 시간에 깨어 있을 누군가이고, 그러자면 홀로 깨어나 버티는 시간인데, ‘몸들에게’라니, 그 안에서 엎치락 뒤치락 관계성이 피어난다면 그건 무슨 색을 띌까 싶었다. 모르긴 몰라도 함께 있음에도 각각 주어진 역할에 홀로 버티는 시간을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라 표현한 건 아닐까. 함께 함에도 혼자 라는 쓸쓸함이 비치는 제목이다.
질병, 고통, 아픔에는 나이가 없다. 아주 어린, 심지어 태내에서도 아픈 아이들부터 나이가 들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짙은 어두움의 그림자는 가깝게 서려있다. 다만 인식하지 못하거나 안 할 뿐. ‘생애문화연구소(기획)’이라더니 나이/듦, 질병, 노년, 세대, 시간, 죽음을 인간의 생애시기마다 ‘문제화’하고 ‘의제화’하려는 노력이 목차에 담겼다.
‘돌보고 돌봄 받는 것’에 시선을 붙들고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의 자리, 환자가 만나는 통증과 고통을 책에서 근거와 위로를 찾고, 젊은 아픔에서부터 치매까지 인간의 생애 여기저기서 아픈 소리를 낸다는 것을 생애 별로 정리해 놓은 듯 하다. 젊어서 아픈 것도 서럽고 늙은이 치매 걸린 취급도 언짢다. 나이/듦, 질병, 노년, 세대, 시간, 죽음은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듯이 목차에서도 여기저기 시간을 노니는 몸들의 인생을 담은 것 같다.
사람의 몸, 신체를 표현할 때 보통 질그릇, 찰흙과 같은 단어에 담곤 하는데 이 책의 표지가 마침 그것을 내포하는 듯 하다. 몸뚱이, 마음을 담는 그릇 등. 찰흙의 질감에 표현된 신체가 이리저리 구부러지고 혹은 서로 기대고 혹은 무릎을 꿇었다. 함께 하는 듯 하지만 누군가는 들여다보는 듯 하고 좌절감이 그려지지만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그림자가 드리워진 형태가 무게감을 더하고 어떤 마음의 상태, 정신의 에너지가 자유롭지 못해 이고 지는 듯한 묵직함이 느껴진다.지금 아픈 이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이들, 나이 들어가며 혹은 나이 들어가는 가까운 이를 보며 불안하고 겁나는 이들, 자신이 지나온 악몽 같은 시간을 삶의 일부로 끌어안으려 애쓰는 이들에게 이 책이 약상자였으면 한다. … 또한 이 책이 공구상자였으면 한다. 사람들이 좀 더 ‘쉽게’아프고 늙을 수 있는 사회, 정의로우며 심지어 기쁜 돌봄이 있는 사회라는 이상을 현실로 당겨오는 데 쓰일 도구를 담고 있었으면 한다. 우리를 낫게 할 말, 동시에 사회를 부수고 다시 지을 말을 만들고 싶다는 터무니없이 큰 욕심에서 조금이라도 선한 것이 탄생했길 간절히 바란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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