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가족으로 살아가는 삶을 기록해보고자 문헌조사를 하는데 검색되는 도서가 딱 3권이었다. 한 권은 소설로 이미 단종되어 버려 도서관에서조차 검색하기 어려운 책이었고 한 권은 군인가족 상담 관련 책이었다. 나머지 한 권은 「대학민국 군인, 그 가족들의 이야기」로 국방일보에서 창간 42주년(11월 16일)을 앞두고, 특별 기획 행사한 군인가족생활수기 현상 공모 모음이었다. 얼핏 살펴보니 각각 주어진 삶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
그래, 좋다. 두 권의 책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며 위안을 했으나 살짝 아쉬움이 들었다. 수상자가 되기 위해 엮어지는 글이 아닌 남편의 직업이 군인이라서 겪는 일상의 일들을 이야기해 주는 책은 없는 것일까. 밥을 먹고 아이를 키우고 공통된 남편들의 직업군으로 함께 살며 겪는 어려움을 토로한 책은 없을까. 숨을 쉬고 바람을 느끼고 뜨거운 태양을 이야기하는 책처럼 나는 군인가족으로 먼저 걸어간 사람들의 일상적 이야기에 목이 말랐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다른 군인 가족들은 어떻게 사는지 갈증이 났다. 그렇다고 안면 몰수하고 당신들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물을 수는 없지 않은가.
‘82년생 김지영’ 이 대한민국을 흔들었다. 오랜 전 책으로 한 번 읽고 최근에 남편과 함께 영화를 봤다. 신랑과 나는 둘 다 83년생이지만 남녀 간에 느끼는 것들이 어쩌면 이리도 다를까. 오히려 신랑이 나더러 당신도 저랬었나를 남발했다. 지영이의 삶은 우리 때 여성이라면 다들 한 번쯤 겪는 일이고 나 역시 그랬다. 더해서 나는 군인의 가족으로서 여성의 삶을 한번더 생각하고 싶었다.
남녀 구분 없이 교육에 열심인 부모님 덕에 원하는 공부를 했다. 남들 못지않게 똑같이 꿈이 있고 미래를 꿈꾸던 여성이었고 결혼은 급하지 않았다. 영화에서와 같이 80년대에 태어난 나는 부부 각자의 길을 응원하는 것이 익숙했다. 남편이 아니더라도 내가 벌면 된다고 생각했고 신랑이 군인일 뿐, 나는 군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에는 변함없지만 군인 가족이라는 특수성 뒤에는 내조를 할 수박에 없는 분위기라는 것이 있다. 아내가 되었기에 내조해야 하고 진급을 위해 사는 삶이 군인 아내로서의 철학이 될까?
나로서 서고 싶은 개인성과 군인 아내라면 내조를 해야 한다는 문화성 차이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나 싶었다. 어린 아이들을 키우기에 엄마의 자리가 필수라는 나의 철학에 의해 자의 반 타의 반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고 후회하지는 않지만 군인 가족이라고 해서 남편의 진급을 위해, 또는 남편에게 흠이 되지 않기 위해라는 생각이 책임감으로 자리하게 되는 것을 본다.
먼저 걸어가신 군인가족의 선배님들이 세월이 흘러서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한다. 나도 안다. 많이 변했을 거고 변해 왔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감정이 이는 것은 군인가족이라고 해서 마치 1+1 상품처럼 비춰지는 것은 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자라도 공부 잘하라는 80년대 생에게 군인가족의 삶은 60,70년대 어디쯤의 여성의 삶을 재현하고 대물림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에 이질감이 인다. 사회는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더디게 흐르는 문화적 시간. 그 격변의 시공간에 군인 아내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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