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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공원에서 놀이밥 데이트 하는 중. 애기엄마가 누군고 하니 바로 나였다. 아이와 함께 놀며 그네를 밀던 중에,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뭐든 한창 열심일 오전 9시 30분 즈음에. 누군가 부를 리 없다는 생각이 당연해 돌아보지 않았다. 한번 더 ‘애기엄마’하는 말에 고개를 돌아보니 나다. 주름이 패이고 거뭇한 기미가 드문드문 있는 딱 봐도 70이 가까워 보이는 남자 어르신이다. 다가오며 손짓하는 모양이 나를 향하니 그제서야 무슨 일인가 싶다.

“아, 저요? 무슨 일이세요?”
“핸드폰에 전화번호 저장을 했는데 위치가 바뀌어서 찾을 수가 없으니 못하겠네, 이것 좀 도와줘 봐요. 이거 위치가 어떻게 달라지게 되나. 내 나이가 아직도 한창 젊은데 이거 원, 이게 들었어도 금방 까먹게 되네.”

순간 키오스크(무인 주문 기계) 앞에서 머뭇대던 나 자신과 겹치면서 어르신의 곤란함이 무언지 알 것만 같다. 분명 익숙하다고 생각했고, 주문이야 기계 앞에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여겼다. 난 아직 젊은데, 생각하고 있었지만 갑작스레 어딘가에서 막히면 당황하며 허공에서 멈칫하는 손가락. 주춤 주춤 마치 신문물 마냥 더듬거리다 주문이 겨우 되면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론 뒤처진 듯한 곤고함이 밀려들던 난감함. 분명히 저번에는 매끄럽게 잘 했는데 오늘은 왜 이랬지 싶은 씁쓸함.

직원이나 사장이 아닌 이상 각 매장마다 메뉴를 다 외우고 있을리 만무하고 사용설명서가 따로 준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다 결정하지 못하고 주춤주춤하고 있으면 갑자기 시간이 다 되었다고 초기 화면으로 전환되는 것도 빨리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연결된다. 기계 앞에서 기계 아닌 인간이 느리다고 다그침을 받는 모양새다. 빠름이나 정확도는 단연 로봇이 빠를텐데 인간에게 빨리 정확하게 주문하라는 건 누구를 위해 준비된 기계인가 싶다.

아마도 나에게 질문을 하신 이 어르신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매일 같이 들고 다니는 기계인 핸드폰이 전화 외에도 다른 기능이 있고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새로운 것 같은 낯설음. 그에 따른 당황스러움. 잘 해내고 싶은 마음. 나이가 들었나 싶은 쓸쓸함. ‘젊은 엄마’하고 불렀을 때 자신은 이제 늙었구나 생각하는 씁쓸함.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최대한 친절하게 어르신과 대화를 나눴다.

‘저도 이럴 때가 있어서 간혹 당황스러워요. 제 기종과 달라서 잘은 모르지만 한번 찾아볼게요. 그래도 어르신 보니까 이게 원인인 듯 한데 잘 찾아내시고 하셨네요.’
최대한 무안하지 않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말을 이었다. 해결될 때까지, 여러 질문을 받고 답하고 하면서. 해결하고자 하는 한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벗이 되어드린다 생각하면서.

사람은 누구나 늙는다. 나도 언젠가는 이 어르신처럼 나이 들어 갈 거고. 그 즈음에라면 세상의 것들이 어려워지는 순간을 만날 수도 있을거다. 그 때 작은 힘이나마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노력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안심이겠다.  머지 않은 미래에 기계처럼 획일화 되지 않고 패스트푸드처럼 빨리 빨리만 주문되지 않고, 인간의 정이 살아 있는 마음이 따뜻하고 타인과 함께 어우러지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이 지금처럼 그대로 이어져 갔으면 하고 바란다.

키오스크로 주문하기, 매장과 브랜드는 관련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