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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초기 대화편들

2019. 7. 30. 16:57 | Posted by Musicpin

뤼시스 우정, 라케스 용기, 카르미데스 절제

플라톤 초기 대화편들


뤼시스 우정에 대입하여 나의 우정을 생각하다.

나에게 우정이라 함은 어려움을 함께하고 좋은 것은 나누며, 쾌락적인 만남보다는 유익한 관계를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현실적으로 돌아보자면 어려움을 나누면 약점이 되고 좋은 것을 나누면 시기 질투가 되었으며, 쾌락적인 만남이 그 순간은 좋을지언정, 유익한 관계가 되는 것은 어려웠다. 유익한 것을 나누고 싶을지언정 나만 유익함을 제공하게 되는 관계라면 어쩐지 쓸쓸하다. 이사를 다니다 보니, 어렸을 적부터 친근하게 오던 관계는 소홀해졌고, 아직까지 깊은 우정이라 할 만한 군인 가족들은 만나기 어려웠다.

쭈욱 돌이켜보면 나는 다수의 사람들을 두루 관리하는 우정보다는 한 명을 사귀더라도 균형적이고 깊으며 넓은 심도 깊은 관계를 원한다. 더해서 교훈이 있고 배움이 있으며 상대방을 통해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 우정을 원한다. 각자 자신을 들여다보며 서로에게 더 큰 성장을 이끌어내는 우정을 원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거나, 아니면 뭔가를 배울 점이 있는 관계를 좋아한다. 다가올 미래를 진취적인 꿈으로 그려나갈 수 있는 우정을 좋아한다. 소크라테스와 뤼시스의 대화에서 우정의 쓸모있음이 이럴 때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원하는 것은 깊고 관계이나 현실적으로 만나기가 쉽지 않다. 현실에서의 우정, 그러니까 가시적으로 10~0을 생각했을 때 깊은 관계일수록 10, 가벼운 관계일수록 0이라고 보면 현재 주변에서는 0 이나 1 에 가까운 관계가 주를 이룬다. 그럴 때 그들이 바라는 선, 거기까지의 유익함을 제공해 주고 배려해 주는 것이 우정의 한 모습으로 원활한 관계로 조화로운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라케스 용기에 대입하여 나의 용기를 바라보다.

책을 읽어보면서 나에게 불러일으켜 지는 용기에 대해 정리해 보면 이렇다. 자신의 언행을 일치시키며 참된 삶을 사는 것.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잘못한 것을 미안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 다수가 옳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과감하게 거절을 하고 나올 수 있는 용기. 지혜를 수반하는 인내. 인내할 수 있는 것이 용기이다. 미덕으로서의 용기. 상대방이 하는 행동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페르조나라면 적당히 모른 척 하는 것도 인내하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겁 없이 무조건 내달리는 행위는 아둔하지만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알면서 지혜를 모색하고 한 걸음씩 걷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정답이라고 하여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정하며 바라보는 것도 용기이다.

스스로 정리해 본 용기에 대한 생각이 일상에서 쉬이 다가오지 않다가 선생님의 카페 글 중 이 대목을 보니 좀 더 밀도 깊게 생각해게 되었다. 용기는 두려움너머의 무언가(비전, 열정)를 보고 행동하는 것. 아래의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바로 용기다. 지혜로웠는가? 두려움을 이겨냈는가? 행동했는가?

 다수의 의견에 아닌 것을 알고 과감히 분리되어 나올 수 있을 때가 최근에 내가 한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믿고 두렵지만 과반이 우르르 몰려가는 상황이어도 깨어있기 위해 분리되어 나온 것. 비록 혼자 걸어가는 길이 외롭고 쓸쓸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냈기에 내가 걸어갈 길과 인생을 좀 더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적을 만들면서 분리되는 것은 지혜롭지 못했지만 안전감을 느끼는 곳이 나의 소중한 것을 놓쳐가면서 유야무야하는 것보다야 홀로 서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한 길이라면 나는 과감히 나를 위해 오롯이 혼자 설 수 있는 결정을 했고 그에 따른 행동을 보인 것이다. 고로 나는 늘 깨어있는 용기와 함께 하기를 자신에게 바란다


카르미데스 절제를 통해 내가 느끼는 절제란,

나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 욕구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 말이나 행동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 우선적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아닌 일을 정하여서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 후 행동해 내는 것. 결론적으로 장단점의 요소들 중, 단점보다 장점을 더 영위하기 위해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하루의 우선순위를 정해 실행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절제의 힘이 요구 되는 것 같다. 시간표를 짜 놨어도 간혹 순간순간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에 합리화하면서 욕망에 나를 풀어놓았을 때, 나는 괴롭다. 가장 내가 나를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절제인데 절제는 극기의 극치가 아니라 한계의 존중이라는 선생님의 문장에서 힌트를 얻는다.

새벽의 글쓰기, 오전에는 전공관련 공부를 하고 악기 연습하며 사회인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 계획한 나만의 하루 루틴을 유지하며 어디로 이사를 다니던지 일상이 정착되도록 훈련하는 것. 절제란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현실적 한계를 존중하면서 극대화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절제의 순간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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