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딱 그 정도.
종교시설이라고 하면 일단 웃음과 미소가 상징처럼 내재되어 있다. 친절한 곳, 다정한 곳, 따뜻한 곳. 개개인의 트러블이 생길 수 있지만 보듬어줄 수 있는 포근한 곳이라는 이미지가 내 안에 있다. 어렸을 적부터 다닌 성당의 영향이다.
군교회도 마찬가지일까. 군대 안에 있으면 군부대일까, 군교회(종교)일까. 아랫사람이 먼저 인사를 하고 챙겨야 하는 곳이 종교인가. 윗사람이 포근하게 품어내는 것이 종교인가. 아니면 계급에 상관없이 가르침을 본받아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보듬는 것이 종교인가. 아니라고 하고 싶어도 부대 안에서의 종교는 군인 특유의 색채가 강해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다정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새로운 곳으로 간다고 여러 사람이 부탁의 말을 해 두었단다. 보내기 아까운 가족이 이동한다고 잘 해달라고. 이사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당도했다는 말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내심 챙겨주는 당부의 말들이 든든했고 감사했다. 연고지가 없는 처음 가는 곳에 먼저 가 있을 말이 따듯했다. 노력한 만큼 진심이 통하는 경우가 이런 건가.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있어서 설마하면서도 내심 안도감이 든 것도 사실이다. 허나 웬걸.
덩그러니 있는 상황이 매주 이어졌다. 선뜻 다가가기도 애매하고 어떤 말들로 말을 걸기가 어려웠다. 나를 먼저 앞서간 말들 중에서도 잘 해달라는 문장이 전달됐다는데 무반응이다. ‘너 알아서 적응해야지, 일일이 챙겨줘야 하니.’ 가 만연한 분위기. ‘너한테 쉽게 알려줄 수 없지’ 정보나 소식을 쉽게 주지 않으려는 언어나 행동의 단속. 딱딱한 분위기의 유연성을 위해 인사를 하면 고개만 까딱인다거나 못 본 척 고개를 돌린다거나. 계급이 낮은 사람이 튀는 것은 못마땅하나 일손은 필요하고, 일을 돕긴 하지만 잘 하면 안 되는 제동장치. 절대 권력의 눈에 드는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아부를 하지는 않는지 감시 장치. 대놓고 드러나지 않는 수동적 감정(행동)의 표현들.
물론 군인가족이다 보니 이사를 다니다 상황과 현장에 상처 아닌 상처를 받았던 경험 때문에 마음을 닫았을 수 있다. 닫힌 마음으로 어느 누구를 만나도 인사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허나 중요한 건 자신들보다 낮은 계급인 사람들이 상처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먼저 군인가족을 시작한 사람들이 겪었던 것을 그대로 대물림하면서 문화세습을 하고 있는 것밖에 안 된다.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 상처받았다면서 그대로 아랫사람들에게 똑같이 행동하는 것은 이런 말이 떠오른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랫사람이기에, 나이가 어린사람이기에, 부하직원이기에 감정풀이가 쏟아져도 참아야 한다. 진급의 여부가 상관의 평가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족이 섞여 만나게 되다보면 손위 사모님이 어떻게 느끼는 지도 민감해질 때가 있다. 차라리 나이나 계급의 차이가 많이 나면 모를까 옳고 그름의 유무를 떠나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계급으로 누른다. 신랑에게 혹여나 안 좋은 분위기가 펼쳐질까봐 목구멍으로 삼키는 경우가 제일 아프다.
외부에서는 부탁대로 나에게 잘 해주고 있다고만 알고 있을까, 아니면 아낌없이 챙긴다고 알고 있을까.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간접적인 무표정으로 일관한 태도였을지라도 이사를 앞두고 있는 마지막엔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미소를 가득 머금는다. 상처받았던 세세한 것들을 뒤로한 채 나는 이런 말들로 대변해야 하겠지.
“그 분 참 좋으신 분이세요, 열심히 하셨어요, 잘해 주셨어요.”
상대방이 권력을 영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상처 운운하기엔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되기 쉽다. 성격 이상한 사람, 유별난 사람, 불평불만 많은 사람. 사회생활 못하는 사람 등등. 처음 적응하게 되는 분위기가 어떠냐에 따라 그 지역에서의 2,3년이 편한지, 편치 못한지 결정된다. 그러니 너무 튀지도 말고, 나서지도 말고,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너무 웃지도 말고 개입하지도 말고, 권력이 요구하는 선에서만 웃고 대접해 드리는 딱 그 정도. 진심과 관심이 들어가면 마음 쓴 나만 아프니 상처받지 않을 선까지의 딱 그 정도. 이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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