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틀리에
허리춤까지 오는 머리를 어깨선으로 자르고 파마를 했다. 늘 핀으로 고정하고만 다녀 무거웠는데 드디어 미용실에 가는 호사를 누렸다. 누가 가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던 것도 아닌데 나를 위한 일에는 어쩜 반 템포 늦춰지는 지 아이러니다.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아내로 산다고 해서 내가 밀려나는 것은 아닐텐데 나를 위한 시간이나 돈이 왜 아깝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이번 여름에 이사도 하고 온 가족이 병원 신세도 지다보니 시기를 놓친 것도 있어 더 나를 챙기지 못한 이유도 있다.
거실에 마련한 나의 작업실. 나만의 공간이다. 사무실도 되었다가 집무실도 되었다가 공방이나, 연습실, 도서관이 되기도 한다. 나만의 아틀리에. 처음엔 방 하나를 차지해 나만의 서재로 사용하고 싶었으나 하나는 아이들 미술방이자 놀이방, 하나는 신랑과 함께 영화방, 하나는 안방 하고보니 거실이 남았다. 주방 한구석에 책상을 들여놔 보기도 했지만 뭔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엄마 하는 일에 관심 많은 남매가 간혹 이것저것 뒤져보는 것도 한 몫 했고.
다양한 필기구가 수납된 트레이가 가까이 있을 수 있도록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는 것이 동선에 맞았다. 열린 공간에서 아이들과 간혹 나란히 앉아 책이라도 읽으면 그렇게 행복했고 더해서 엄마가 하는 것이 비밀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이상 엄마 물건에 손대는 일은 더 없었다. 비밀 공간에 두었을 때 마치 더 열어보고 싶은 판도라의 상자였는지 모른다. 차라리 내 손으로 직접 오픈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면 혹여나 같이 공부하자고 할까봐 오히려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처음엔 나만의 공간이라는 눈에 보이는 시공간에 집착했다. 나만의 장소, 나만의 성지. 해서 처음엔 괜찮은 커피숍들을 다녔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 그러나 그것이 오래지 않아서 체력의 소진이나 생각지 못한 일들의 발생으로 흐지부지 애매해졌다. 커피숍에 오래 앉아 전기를 축내는 손님으로 보이는 것도 싫어서 도서관으로 출근해 보기도 했다. 집중이 더해지는 것도 잠시. 새로 나온 신간이나 잡지, 육아서 코너에 앉아서 아이들 관련된 책들을 집어 들어보는 나를 보게 됐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해서 찾은 곳이 다시금 육아를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되고 있는 기이한 현상.
주방으로 시작해서 커피숍, 도서관, 거실의 순서로 돌았다. 어느 곳 다 처음엔 신선함으로 집중도 잘 되고 나만의 공간으로 손색이 없다. 이동에 이동으로 공간의 변화를 주어 신선함으로 집중을 이어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공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집중하면 된다. 아이들이 모두 등원한 후의 집은 그 누가 터치하지 않는 최적의 아틀리에가 된다. 전공공부를 할 때면 도서관이 되고 글을 쓸 때면 작업실이 되고 악기를 연습할 대면 연습실, 책을 읽으면 서재가 된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나를 위한 시공간을 구축하고 있느냐, 나를 위해 무엇하나는 확보하여 행동하고 있느냐, 강화하고 있느냐의 여부다. 짧아져 가벼워진 머리카락이 상쾌한 것처럼. 나만의 시공간으로 충전하는 것처럼. 나를 위한 행동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존중이다. 나를 아끼고 챙겨주는 행동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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