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애들아, 저기 봐봐. 엘사에 나오는 땅의 정령 바위 거인들이 잠들어 있어.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리에 바위 거인들이 잠에서 깰지도 몰라.”
한참을 조잘거리던 입과 행동이 사뭇 진지해지고 애들의 눈이 한껏 커진다. 엄마는 아이들의 동심과 대화했다는 자부심에 한껏 들뜬다. 하여 과하게 쉴새 없이 조잘조잘 ‘땅의 정령이 여기에 있네, 바위 거인들이 일어나면 어떨 것 같아? 와, 여기서 다들 잠을 자고 있나 봐, 날이 더워서 물 속에서 자고 있네, 코만 내어 놓고서 숨을 쉬는 것 좀 봐. 엄마가 한번 큰 목소리로 깨워 볼까.’ 했더랬다. 그러다 결국 남매가 한 마디 외친다. ‘엄마, 좀 조용히 해봐.’
후훗. 아이들이 놀란 것 좀 봐. 재밌어 했을라나. 진짜 정령들이 잠이 깰까봐 노심초사해서 그러나? 아이들이 보기엔 큰 바위들이 어떻게 보이려나 내심 으쓱했다. 헌데 이런, 남매의 반응이 상이하다.
둘째 아이. “엄마, 목소리가 너무 크잖아, 진짜로 바위 거인이 깨면 어떡해” (훗. 그럼 그렇지!!)
첫째 아이. “엄마, 목소리가 너무 크잖아, 그만 좀 해, 시끄러워.” (어머, 이럴수가!!)
세심히 살피는 모양새가 내 보기엔 둘 다 짐짓 놀랬던 게 분명하다. 헌데 반응들이 왜 이렇게 예상과 다르지? 아니라면 분명히 둘 다 놀랬으나 반응이 다른 거겠지? 둘째 아이는 아직 이런 상상의 대화가 가능한데 첫째 아이는 진지하긴 했지만 믿지 않는 눈치다. 설마, 이런. 벌써 이렇게 큰 건가?
마냥 어리기만 한 듯 한데 어느새 생각이 자라고 몸이 자란다. 아직 애기 같은데 하루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다. 점차 아이의 독립심을 응원하고 스스로 잘 자라고 있음을 부모로서 인정해야 할 때다. 품을 내어주고 시간을 내어주자던 다짐으로 영유아기를 함께 했다. 아이가 늘 엄마를 찾는 게 익숙했다. 아직은 작고 어리기만 한 아이 같은데 그 생각이 과거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은지 들여다 봐야 할 때이다.
여전히 엄마의 품에 파고들 때도 많지만 어쩌면 이제 친구의 자리가 점차 커질 나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인 것 같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부모로서의 역할도 성장해야 하는 때’ 말이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아이가 해내는 것을 지지하고 실수를 보듬어주고 말이다. 학령기의 아이가 제 속도와 발맞추어 걷는다. 아이는 언제나처럼 잘 자란다. 이제는 현재를 직시하고 그에 따른 행동과 마음가짐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되돌아보는 지점이다. 아이처럼 엄마도 한 걸음 더 성숙해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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