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과 이별하세요.
돌이켜보면 어느 시기이든 어느 지역이든 살기에 적합했다. 신혼 때는 신혼 나름대로, 첫 아이와 지낼 때는 그에 맞춰서, 둘째와 함께 보낼 때는 그에 적합하게 좋았다. 어떤 지역이든 살기 좋았다. 각 지역이 자랑으로 하는 각각의 산, 바다, 강 등, 자연이 어디든 그 곳에 있었고 맛 집, 카페, 문화생활 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지역의 특색대로 개성 있게 존재했다. 요즘 유행하는 어느 지역 한 달 살기처럼, 나에게 이사는 어느 지역 2년 살기였다고나 할까. 몇 박 며칠 가볍게 떠나는 여행이 아닌 조금은 기나긴 여행이라고나 할까.
군인가족으로 살면서 어려웠던 것은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가 아니다. 사람이다. 상처가 되는 지점에서는 늘 사람이 있었다. 견제하는 눈빛, 시기 질투, 차가운 말투, 나에 대한 오해와 무관심의 표현, 억지스런 행동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읽히는 그 모든 것들에서, 흡사 악플이 눈앞에서 읽히는 것처럼 결국에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제일 힘들었다.
떠날 사람과 남는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외롭다.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사람대로 깊이 정을 주지 않는다. 어차피 2년여가 지나면 뜰 사람이기에 깊은 정을 주지 않는다. 왜? 정을 줘봤자 준 사람이 더 힘드니까.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외롭다. 왜? 떠나보낼 사람과 친해져봤자 금방 이별이고 그 빈자리가 허전하니 정을 줘봤자 나만 더 힘드니까. 내 아이들이 겪을 문제들도 이와 비슷했다. 지역에 있는 비슷한 나이 또래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헤어짐의 아픔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지 않다. 군인가족의 자녀들은 그래서 아쉽고 친구가 고프다.
일부러 상처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더 상처받은 사람이 있고 덜 상처받은 사람이 있을 뿐. 상처 입은 자들 사이에선 다들 자신의 상처만 보일 뿐,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다. 잠시 스쳐지나갈 사이가 뭐라고 이리도 신경이 쓰이는지 말이다.
어쩌면 잘 지내야 한다는 이상적인 어울림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내로서 내조하는 것과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엄마로서 군인가족이라는 틀에 혼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에 대해 부정적 평가나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대인관계가 아닐까. 사람관계라는 것이 깊은 속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도 있지만 일과 연관된 사회적 인간관계도 있다. 집 밖을 나가면 마주치는 다른 군인 가족들과 마음이 맞아서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 확률이 몇이나 될 수 있을까.
모처럼 김미경 강사님의 강연을 들으러 간 자리에서 그 분이 하신 말씀이 가슴을 탁 쳤다. “옆 집과 헤어지세요.”
혼자 다니면서 자기개발에 힘 쏟고 나를 위해 살라는 조언을 하시는 거다. 옆집과 어울려봤자 지금 수준의 딱 그 정도 되는 사람들이랑 모이게 된다면서 말이다. 팔자타령만 하게 되는 관계는 나의 성장을 돕지 못한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인연을 아파트 내에서 만난다는 건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울림이라는 단어 안에는 조화롭다는 느낌이 들어 있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조화롭지 못한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간에는 그 누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도 사람들과 못 어울리는 내가 문제인건가 라는 생각이 스멀거렸다.
뭐 하러 굳이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끼리 들볶이며 관계를 맺으려했을까 싶다. 김미경 강사님의 말씀처럼 나 혼자 지내도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만나도 고민, 만나지 않아도 고민된다면 그 시간에 그냥 나를 위해서 내 삶과 하루를 잘 경영하는 것만 그려봐도 된다. 옆집과 헤어져서 나를 우선으로 살고 지금 여기에서 잘 지내기 위해, 그저 피상적이지만 부드러운 인간관계를 맺는 딱 그 정도만이 사회생활에서는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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