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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8.27 옆집과 이별하세요.
  2. 2019.08.27 나는 엄마다
  3. 2019.08.05 아이들과 덕분에
  4. 2019.08.05 정체성을 명확하게
  5. 2019.07.30 플라톤 초기 대화편들
  6. 2019.07.29 이비인후과 다녀오다
  7. 2019.07.26 엄마, 이사 가는 거지?
  8. 2018.11.22 이사 후

옆집과 이별하세요.

2019. 8. 27. 14:35 | Posted by Musicpin

옆집과 이별하세요.

 

돌이켜보면 어느 시기이든 어느 지역이든 살기에 적합했다. 신혼 때는 신혼 나름대로, 첫 아이와 지낼 때는 그에 맞춰서, 둘째와 함께 보낼 때는 그에 적합하게 좋았다. 어떤 지역이든 살기 좋았다. 각 지역이 자랑으로 하는 각각의 산, 바다, 강 등, 자연이 어디든 그 곳에 있었고 맛 집, 카페, 문화생활 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지역의 특색대로 개성 있게 존재했다. 요즘 유행하는 어느 지역 한 달 살기처럼, 나에게 이사는 어느 지역 2년 살기였다고나 할까. 몇 박 며칠 가볍게 떠나는 여행이 아닌 조금은 기나긴 여행이라고나 할까.

 

  군인가족으로 살면서 어려웠던 것은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가 아니다. 사람이다. 상처가 되는 지점에서는 늘 사람이 있었다. 견제하는 눈빛, 시기 질투, 차가운 말투, 나에 대한 오해와 무관심의 표현, 억지스런 행동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읽히는 그 모든 것들에서, 흡사 악플이 눈앞에서 읽히는 것처럼 결국에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제일 힘들었다.

  

 떠날 사람과 남는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외롭다. 떠나는 사람은 떠나는 사람대로 깊이 정을 주지 않는다. 어차피 2년여가 지나면 뜰 사람이기에 깊은 정을 주지 않는다. ? 정을 줘봤자 준 사람이 더 힘드니까. 남은 사람은 남은 사람대로 외롭다. ? 떠나보낼 사람과 친해져봤자 금방 이별이고 그 빈자리가 허전하니 정을 줘봤자 나만 더 힘드니까. 내 아이들이 겪을 문제들도 이와 비슷했다. 지역에 있는 비슷한 나이 또래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들에게 헤어짐의 아픔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지 않다. 군인가족의 자녀들은 그래서 아쉽고 친구가 고프다.

  

 일부러 상처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싶다. 더 상처받은 사람이 있고 덜 상처받은 사람이 있을 뿐. 상처 입은 자들 사이에선 다들 자신의 상처만 보일 뿐, 상처가 없는 사람이 없다. 잠시 스쳐지나갈 사이가 뭐라고 이리도 신경이 쓰이는지 말이다.

  

 어쩌면 잘 지내야 한다는 이상적인 어울림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내로서 내조하는 것과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엄마로서 군인가족이라는 틀에 혼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에 대해 부정적 평가나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이 나와 다르기 때문에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대인관계가 아닐까. 사람관계라는 것이 깊은 속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친구도 있지만 일과 연관된 사회적 인간관계도 있다. 집 밖을 나가면 마주치는 다른 군인 가족들과 마음이 맞아서 인간적으로 친해질 수도 있겠지만 그 확률이 몇이나 될 수 있을까


  모처럼 김미경 강사님의 강연을 들으러 간 자리에서 그 분이 하신 말씀이 가슴을 탁 쳤다. “옆 집과 헤어지세요.” 



 혼자 다니면서 자기개발에 힘 쏟고 나를 위해 살라는 조언을 하시는 거다. 옆집과 어울려봤자 지금 수준의 딱 그 정도 되는 사람들이랑 모이게 된다면서 말이다. 팔자타령만 하게 되는 관계는 나의 성장을 돕지 못한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인연을 아파트 내에서 만난다는 건 환상일지도 모른다. 어울림이라는 단어 안에는 조화롭다는 느낌이 들어 있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조화롭지 못한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춰지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다. 그간에는 그 누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데도 사람들과 못 어울리는 내가 문제인건가 라는 생각이 스멀거렸다


  뭐 하러 굳이 상처받고 싶지 않은 사람끼리 들볶이며 관계를 맺으려했을까 싶다. 김미경 강사님의 말씀처럼 나 혼자 지내도 전혀 문제가 없는데도 말이다. 만나도 고민, 만나지 않아도 고민된다면 그 시간에 그냥 나를 위해서 내 삶과 하루를 잘 경영하는 것만 그려봐도 된다. 옆집과 헤어져서 나를 우선으로 살고 지금 여기에서 잘 지내기 위해, 그저 피상적이지만 부드러운 인간관계를 맺는 딱 그 정도만이 사회생활에서는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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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다

2019. 8. 27. 14:26 | Posted by Musicpin

나는 엄마다

옥녀봉 중턱 쯤 자리한 놀이터. 우리 가정 포함 총 세 집이서 나들이를 갔다. 책육아,  함께 아이들 놀리기, 육아 이야기(수다)까지 13조였다. 그 날은 둘째 아들이 세 살 즈음. 30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때다. 옥녀봉 놀이터에 있던 미끄럼틀 위에서 5살 남자 아이는 우리 아들을 때렸다. 마치 스트리트 파이트 게임 한 장면처럼(실제 아이네 집엔 스트리트 파이트 게임기가 있어 자주 했다.). 왼손으로 때리고 오른손으로 주먹을 날렸으며 왼발로 차고 오른 발로 내리찍었다. 아들은 쫙 핀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 쪽을 가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고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얼음.

 적막이 흘렀고 다섯 살 아이는 내가 지켜보고 있음에 당황했는지 도망치듯 미끄럼 타고 내려와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놀라서 백지가 되었다. 아무 생각도 행동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맞아서 놀랐을 아들을 얼른 품에 안았다. 품에 꼭 안고서 그 장소를 벗어났다.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아들도 아들이지만 내가 정말 많이 놀랐다. 내가 아는 다섯 살 중 저렇게 때리는 아이가 있었던가. 양 손과 양 발을 사용하여 때리는 아이가 있다니....... ? 무엇 때문에? 그저 형과 같이 놀고 싶었을 뿐인데? 타인을 때린다는 것에 대한 도덕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정에서 가르치지 않나? 먼저 차지한 미끄럼틀이 자신의 영역이 되었기에 때린건가? 이유를 막론하고 때린다는 것은 타당한 건가?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 아이 주도 하에쟤랑 놀지마.’로 여론 형성이 되어 따돌림도 받았다. 더군다나. 내 아들이 미끄럼틀 계단에 가만히 줄만 서 있는데도 쟤가 자꾸 밀었어요.’라는 상황까지.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를 써 보지만 그 날 만큼은 파노라마. 한 조각 사진처럼 트라우마로 각인되어 버렸다. 그리고 우리 아들을 볼 때마다 내가 그 때 아무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한 것 같아 죄책감이 인다.

아이 엄마에게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 아이 엄마는 통화 중이었다. 설령 함께 봤다고 한들. 사과는 커녕 달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 아들만 따돌리며 놀 때 그 엄마는 나에게 아이들 노는 문화에 끼어들지 말라던 엄마다. 말해 무엇할까.

아들이  같이 놀고 싶다며 닫힌 문 앞에서 울부짖을 때, 나의 아들만 따돌림 당할 때,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내 아들이 상처 받고 있는 상황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가 아이들 노는 문화의 적정선인가? 내가 아들을 다독거린 후 따라오는 말은 예민한 엄마, 호들갑스런 엄마, 아들보다 딸 키우기 적당한 엄마, 딸에 맞춰진 엄마였다. 사과를 하는데도 돌아오는 말은 예민한 엄마에 아이가 따돌려지는 상황이라면. 내 아들에게만 유독 부정적이고 안 좋은 분위기가 흐른다면. 나는 선택해야 했다. 내 아들을 소외시켜가면서 아이들과 놀리고 엄마들과 관계 유지를 하느냐, 아니면 내 아들의 보호자로 아이를 지킬 것이냐.

당연히 나는 내 아들이 먼저다.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값 없는 수다보다 내 자식이 더 귀한 엄마. 내 아들이 아파하고 슬퍼하는 데 지켜만 보라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나를 생각한 조언일까. 그 엄마의 아이들을 위한 것일까. 자신의 아이에게 이기는 경험을 주기 위해 다른 동생을 때려도 된다는 것이 옳은 것일까. 억울하지만 누구에게도 토로할 수 없을 때. 오히려 민감하고 예민한 사람 취급 받을 때상대방 엄마 옆에 서서 나를 적대시할 때.남자아이들은 그렇게 서열싸움이 당연한 거다, 이해 해야 한다' 할 때. 과연 자신의 아이가 그렇게 맞았다면 점잖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결국 관계가 껄끄럽게 되었지만  나는 아들을 위해 거리를 두는 선택을 했다. 같은 상황이 또 온대도 나는 똑같은 결정을 할 거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람을 가려 사귀라고 아들에게 이야기해 줄 거다. 함부로 하는 사람에게는 진심일 필요가 없다고 말이다.

나와 아들만 바라보고 집중한 후, 안정감있게 잘 살고 있다. 혹여나 또 나 혼자 궁지에 몰리는 상황이 온다 해도 난 내 아이를 지킬 거다. 나 혼자라 극성 맘이 되고,  이상한 엄마, 요란한 엄마, 과도한 엄마로 불릴지언정. 내 아이의 미소와 건강한 내면을 지켜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아이의 보호자로서 나는, 나의 아이를 잘 보살펴야 하는 의무가 있는 나는. 나는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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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덕분에

2019. 8. 5. 20:37 | Posted by Musicpin

아이들과 덕분에 

이사한 지 22일만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달이 바뀌어서 8월 첫 날. 다양한 감정을 품었던 7월이 어느새 지나갔다. 언젠가 지나고 보면 8월이 되어 있을 것이라 다독였는데 그 날이 오늘이다. 갑자기 들어 닥친 날짜마냥 달력이 새롭다. 시간이 빠른지 내가 정신없이 보냈는지 아무튼 시간은 흐른다

이 지역에서 슬그머니 익숙해지게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은 바로 아이들이다. 다닐 예정인 어린이집 방학이 87일까지인지라 아이들과 함께 보낼 보람찬 시간표를 짜야했다. 이사를 하면서 주소를 이전하면 반드시 챙겨오는 지역 팜플렛. 아는 지인이 이 곳에 없는 관계로 팜플렛에 소개된 곳들부터 챙겨본다. 그 중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하기 좋은 장소들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그러니 시간이 잘 갈 수밖에.

 어머나, 세상에. 복지를 잘 해놓은 곳이라더니 공원이 아주 많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다가 한 군데 들르고, 도서관에 회원증을 만들고 나오면서 놀았으며, 팜플렛에 소개되어 있어서 찾아가 놀았다. 가장 기다란 미끄럼틀이 있는 공원, 정원을 잘 조성해 놓은 공원, 자전거 공원, 물놀이파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 되어 있는 물놀이 공원, 산책하기 좋은 공원, 게다가 아파트 상가에 자리한 키즈룸도 한 몫 했다. 보통은 키즈 카페를 가야지만 있는 방방이나 미끄럼틀이 아파트 관리 사무소 건물에 위치되어 있으니 이제 막 이사를 온 우리들에게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더더군다나 시간제한도 없고 사람도 없어서 우리 아이들만 빌려서 노는 호사를 누렸다. 어린이집을 가지 않는 매일 매일을 어떻게 보내나 염려스러웠는데 이사와 시즌이 맞아서 멀리 나가지 않아도 새로운 곳들을 방문하다보니 시간의 흐름도 빠르게 느껴진다.

집에서 차를 타고 15분여를 가다보면 휴양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당장 도시락과 간식을 싸서 나들이를 다녀왔다. 자연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고 싶다는 나의 바람이 현실이 되는 순간. 진심으로 감사했다. 어린이 자연 놀이터가 있어서 나무를 타고 놀고 솔방울을 모았다. 돗자리 옆으로 지나다니는 다양한 곤충들, 온갖 소리로 지저귀는 앙증맞은 새 들, 각자의 자리에 위치하며 나부끼는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는 나무와 꽃들까지.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엄마이다 보니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해서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이렇게 종종 산에 놀러와 함께 놀아줄 수 있다는 것이 제일 기뻤다.

휴양림 꼭대기에는 천문대도 있어서 별 관측이 가능하다. 관측과 관련된 상영은 예약제이기에 미리 예약을 하면 아이들과 함께 별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산에서 놀다가 별도 보고 내려오면 지금의 아이들 시기와 맞아 떨어지기에 엄마로서 최고로 좋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는 산에 들어가 피톤치드가 나오는 나무그늘에서 돗자리 펴고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며 책을 보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잘 적응해 준다면야 너무나 좋다. 애들 덕분에 매일 같이 나가서 드라이브 아닌드라이브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는 것 같다. 나 혼자였다면 적응이 쉽지 않았을텐데 아이들 덕분에 오늘도 집을 나선다. 복지가 잘 되어 있는 지역과 연이 닿아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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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명확하게

2019. 8. 5. 20:33 | Posted by Musicpin

정체성을 명확하게

뉴스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 직장인의 처세 생존전략. 나에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덕목?들이다. 어째서 군인가족임에도 직장인의 처세술에 눈길이 갔을까. 보는 순간 웃음이 났다. 그리고 조금 씁쓸했다. 어쩌면 모든 것을 함께 하면서 어울릴 수 있는 인연을 갈망했는지도 모른다. 이사 다니면서 따라오는 외로움이나 군인가족으로 살면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함께 공유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고 그런 인연을 만나고 싶었다. 함께 보통의 일상을 공유한다는 것. 그건 순수했던 나의 이상적인 그림에 불과한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군인가족 8년차가 되어 보니 현실과 이상의 차이였음을 실감한다

가 일상적으로, 그저 지나다니는 동선에서 습관적으로 만나지는 모임 같은 만남과 우정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잡았기 때문 아닐까. 의무적으로 만나지는 것과 가족으로서 삶을 공유하는 것, 정말 친해지고 싶은 우정의 의미를 혼동하였기 때문 아니었을까. 나를 제대로 알고 있어야 조화로운 관계도 가능하다. 군인가족들이 잠깐 어울려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우정이란 과연 가능할까.

플라톤의 대화법 책을 나누는 그룹톡에서 김유진 선생님의 조언에 머리를 탁. 쳤다. 우정이라 할 수 있으려면 배려와 진솔함, 통하는 관심사, 충정이 있어야 한다. 배려만 하는 것은 우정이 아닌 서비스직이며 진솔하기만 한 것은 상담자와 내담자이고, 상대방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진정한 우정이다. 더불어 우정을 가늠하는 척도도 있다고 한다. 배려, 상응, 진솔, 충정에 따른 점수를 매겨보면 현재 나의 친구들에서 우정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부분에서 점수가 높은지 낮은지를 체크할 수 있는 거다.

지금껏 만나는 우정을 논할 때 역시 이러할 진대, 그저 한 지역에서 머물 때뿐일 만남에서 무슨 우정을 따질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는 것도, 삶의 방식도, 살아가는 데 중요한 철학도. 물론 모임에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은 아주 만족스런 충족감을 가져다 줄 것이다. 또는 만나는 년 수가 길어서 서로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감안할 수 있는 진정 가족 같은 우정이라면 그것으로 좋겠지. 그러나 2,3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나로서는 쉽지가 않다. 서로를 다 알기도 전에 가족들은 이사를 한다. 적당히 거리를 둘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덜 외롭다.

어쩌면, 진심을 다한다면 우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부터가 판단의 착오다. 나의 사회성이나 인간관계를 확인하기에 군인가족은 특수한 집단이다. 뭐랄까....... 동맹이나 동호회, 때론 몇 동 몇 호에서 수다 떠는 습관뿐인 모임이랄까.

우정과 모임의 정의를 다시 재정립한 만큼 관계 안에서 나는 어떻게 있기를 원하는지도 다시금 재정립해 볼 문제다. 우정이든 모임이든, 보통의 관계이든 시작은 나부터니까. 함께 하길 원하는 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지, 어느 선까지 허용하고 허용하지 않을 것인지. 나를 제대로 아는 것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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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초기 대화편들

2019. 7. 30. 16:57 | Posted by Musicpin

뤼시스 우정, 라케스 용기, 카르미데스 절제

플라톤 초기 대화편들


뤼시스 우정에 대입하여 나의 우정을 생각하다.

나에게 우정이라 함은 어려움을 함께하고 좋은 것은 나누며, 쾌락적인 만남보다는 유익한 관계를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헌데 현실적으로 돌아보자면 어려움을 나누면 약점이 되고 좋은 것을 나누면 시기 질투가 되었으며, 쾌락적인 만남이 그 순간은 좋을지언정, 유익한 관계가 되는 것은 어려웠다. 유익한 것을 나누고 싶을지언정 나만 유익함을 제공하게 되는 관계라면 어쩐지 쓸쓸하다. 이사를 다니다 보니, 어렸을 적부터 친근하게 오던 관계는 소홀해졌고, 아직까지 깊은 우정이라 할 만한 군인 가족들은 만나기 어려웠다.

쭈욱 돌이켜보면 나는 다수의 사람들을 두루 관리하는 우정보다는 한 명을 사귀더라도 균형적이고 깊으며 넓은 심도 깊은 관계를 원한다. 더해서 교훈이 있고 배움이 있으며 상대방을 통해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 우정을 원한다. 각자 자신을 들여다보며 서로에게 더 큰 성장을 이끌어내는 우정을 원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거나, 아니면 뭔가를 배울 점이 있는 관계를 좋아한다. 다가올 미래를 진취적인 꿈으로 그려나갈 수 있는 우정을 좋아한다. 소크라테스와 뤼시스의 대화에서 우정의 쓸모있음이 이럴 때 해당된다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원하는 것은 깊고 관계이나 현실적으로 만나기가 쉽지 않다. 현실에서의 우정, 그러니까 가시적으로 10~0을 생각했을 때 깊은 관계일수록 10, 가벼운 관계일수록 0이라고 보면 현재 주변에서는 0 이나 1 에 가까운 관계가 주를 이룬다. 그럴 때 그들이 바라는 선, 거기까지의 유익함을 제공해 주고 배려해 주는 것이 우정의 한 모습으로 원활한 관계로 조화로운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라케스 용기에 대입하여 나의 용기를 바라보다.

책을 읽어보면서 나에게 불러일으켜 지는 용기에 대해 정리해 보면 이렇다. 자신의 언행을 일치시키며 참된 삶을 사는 것.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잘못한 것을 미안하다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 다수가 옳다고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과감하게 거절을 하고 나올 수 있는 용기. 지혜를 수반하는 인내. 인내할 수 있는 것이 용기이다. 미덕으로서의 용기. 상대방이 하는 행동들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페르조나라면 적당히 모른 척 하는 것도 인내하는 용기라고 생각한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겁 없이 무조건 내달리는 행위는 아둔하지만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알면서 지혜를 모색하고 한 걸음씩 걷는 것도 용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것이 정답이라고 하여 타인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정하며 바라보는 것도 용기이다.

스스로 정리해 본 용기에 대한 생각이 일상에서 쉬이 다가오지 않다가 선생님의 카페 글 중 이 대목을 보니 좀 더 밀도 깊게 생각해게 되었다. 용기는 두려움너머의 무언가(비전, 열정)를 보고 행동하는 것. 아래의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바로 용기다. 지혜로웠는가? 두려움을 이겨냈는가? 행동했는가?

 다수의 의견에 아닌 것을 알고 과감히 분리되어 나올 수 있을 때가 최근에 내가 한 가장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을 믿고 두렵지만 과반이 우르르 몰려가는 상황이어도 깨어있기 위해 분리되어 나온 것. 비록 혼자 걸어가는 길이 외롭고 쓸쓸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냈기에 내가 걸어갈 길과 인생을 좀 더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적을 만들면서 분리되는 것은 지혜롭지 못했지만 안전감을 느끼는 곳이 나의 소중한 것을 놓쳐가면서 유야무야하는 것보다야 홀로 서는 것이 진정 나를 위한 길이라면 나는 과감히 나를 위해 오롯이 혼자 설 수 있는 결정을 했고 그에 따른 행동을 보인 것이다. 고로 나는 늘 깨어있는 용기와 함께 하기를 자신에게 바란다


카르미데스 절제를 통해 내가 느끼는 절제란,

나를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 욕구를 적절하게 관리하는 것. 말이나 행동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실행하는 것. 우선적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과 아닌 일을 정하여서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정한 후 행동해 내는 것. 결론적으로 장단점의 요소들 중, 단점보다 장점을 더 영위하기 위해 자신을 컨트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하루의 우선순위를 정해 실행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절제의 힘이 요구 되는 것 같다. 시간표를 짜 놨어도 간혹 순간순간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에 합리화하면서 욕망에 나를 풀어놓았을 때, 나는 괴롭다. 가장 내가 나를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절제인데 절제는 극기의 극치가 아니라 한계의 존중이라는 선생님의 문장에서 힌트를 얻는다.

새벽의 글쓰기, 오전에는 전공관련 공부를 하고 악기 연습하며 사회인으로 나갈 준비를 하는 것, 계획한 나만의 하루 루틴을 유지하며 어디로 이사를 다니던지 일상이 정착되도록 훈련하는 것. 절제란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현실적 한계를 존중하면서 극대화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나에게 필요한 절제의 순간들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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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인후과 다녀오다

2019. 7. 29. 15:03 | Posted by Musicpin

이비인후과 다녀오다

 

이사 전부터 콜록거리던 기침이 좋아지는 듯 했더니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지면서 컹컹댄다. 일상생활을 하는 데는 지장이 없는데 한밤 중 기침이 심해져 깬다. 시계를 확인해 보면 새벽 2,3 시 즈음이다. 기침으로 인해 잠이 깨다보면 그 때부터 잠이 쉬이 들지 않는다. 눈은 감고 침대와 밀착되어 있지만 뇌가 깨어 활동하는 느낌이다. 새벽기상을 목표로 지내고 있는데 이렇게 도중에 깨어버리면 하루가 더 피곤해진다. 물론 계획을 이행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간밤의 기침이 더욱 심해져 오전에 아이들이 등원하자마자 이비인후과를 검색했다. 이사를 온 직후라 근처 병원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블로그 검색을 해 봐도 지도나 위치만 나와 있을 뿐. 좋은 지 나쁜 지 친절한 지 아닌지는 정보가 없다. 이럴 때 타지로 이사 온 것은 난감하다. 신뢰도가 없는 새로운 병원을 내 발로 찾아가야 할 때 조금은 망설여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상하게도 이비인후과들은 불친절했다. 아니, 더러 친절한 병원들도 있겠지만 과거 어느 지역들은 의사가 환자들을 대할 때 인성이 보인다. 한참을 어른인데도 반말을 한다거나 말길을 못 알아듣는다고 짜증을 낸다거나 비난하는 말을 서슴지 않다거나. 안 그래도 아파서 찾는 병원이고 불편함과 원인을 찾아 치료를 받기 위해 찾는 곳인데 그것도 모르냐는 식의 진료를 받는 순간은 정말이지 불쾌감이 치받아 오른다.

  기운도 없고 싸워봤자 아닌가. 공부 좀 하신 분들이고 내가 의학용어를 모르는 것도 사실이니 그냥 참지만 다시는 그 병원들을 찾지는 않았다. 그보다도 더 먼 곳, 30분이 걸리던 1시간이 걸리던 더 좋다는 병원들을 검색해서 다니고는 했다. . 교통이 더 복잡하고 정보가 없던 시절이었더라면 어땠을지 끔직하다. 그런 병원들은 지역에서 한두 군데가 다여서 텃세인지 갑질인지 모르겠지만 그 지역 어르신들은 가까운 시내인 그런 병원을 다닐 수밖에 없다. 오늘처럼 급했던 나 역시도.

  고민했다. 좀 더 큰 도시로 다녀올 것인가. 아니면. 잠깐 눈 딱 감으며 모욕적임을 참고 목적인 약만 지으면 되는 가까운 곳의 병원을 다녀올 것인가. 이럴수가. 아이가 점심 먹고 하원을 하는 적응기간인 것을 감안하면 가까운 곳으로 다녀오는 것이 현명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눈 딱 감고 얼른 끝나길 바라지, .’

  헌데 웬걸. 간호사들도 의사도 친절했다! 유레카!

근처 이비인후과로 검색했더니 역시나. 두 군데 나오는 곳 중, 체인 병원 말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곳으로 일부러 찾아왔더니 선택이 잘못되진 않았다. 의사와 간호사 모두 책임감 있는 행동으로 부드러웠다. 친절하고 매끄러운 서비스 정신은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부드러운 말, 배려하는 마인드면 충분하다. 의사 선생님도 증상과 검진을 하고서 관련된 약 처방과 호전되지 않고 증상이 유지된다면 다시 보자는 말로 깔끔했다. 모른다고 핀잔을 주거나 말대로 하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그래, 이런 정도라면 내 돈을 주고 다닐 의향이 충분히 있다. 어쩌면 당연한 건데 이것만으로도 뭉클했다.

  병원이라 하면 소아과, 내과, 치과, 산부인과 등 아이들과 관련된 질환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인데 이사를 다니다보니 내가 직접 아바타가 되어 경험해 보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안심이 된다. 같은 군인가족인 사람들한테 물으면 어떠냐고??? 정보를 물어보거나 지역에 대한 조언을 구해도 답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뭐랄까, 요점만 빼가는 얍삽한 사람으로 비춰진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상대적인 권력이 조금 작동하는데 먼저 온 사람이 지역에 대한 정보가 조금 더 많다. 그럼 그것이 힘이 된다. 모르면 바보라고 하지 않은가. 처음 와서 모르는 것이 당연한데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약점이 된다. 그것은 맛집이건, 카페이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지역에서 안내하는 모든 것에서 말이다.

  물론 친절한 사람들이 더러는 있다. 그런데 그런 다정한 사람을 만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아니면 이사 갈 때쯤 상대방의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거나. 쉽게 친해졌다가 아닌 사람들을 만나면 더 피곤해지기에 쉽사리 마음을 열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일상의 정보들에도 인색한 모양새를 띄게 되는 것 아닐까.

  어찌되었던 기분 나쁘지 않게 병원에 잘 다녀왔다. 삼일 치의 약으로 기침 증세도 쉽사리 완치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이 병원 마음에 들었다. 번창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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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사 가는 거지?

2019. 7. 26. 16:39 | Posted by Musicpin






엄마, 이사 가는 거지?



 

둘째 아들 녀석이 아침을 먹다가 문득 질문을 한다.

엄마, 이사 하는 거지?”

“.......”

  이상하다. 이 질문만 벌써 몇 번을 하는지 모르겠다. 첫째 아이야 어


느 정도 커서 친구들과 정이 들고 선생님들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이 이사였고, 아빠가 군인이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슬프지만 이해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헌데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둘째 아들 녀석이 같은 질문을 연신 여러 번 해대니 문득. 이 아이도 설마? 라는 생각이 들어 눈치를 살핀다.

  정원이, 이사하고 싶어?, 아니면, 예전 집이 생각나는 거야?, 이제는 여기가 우리 집이잖아. 우리는 이사해서 이제 여기서 사는 거야.”

   그랬더니 아들 녀석.

우리 집은 8(예전 집)이잖아, 여기는 2층이고. 이사해야 하잖아

  4, 2세인 아이가 예전 집을 자꾸 언급하니 어리다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나란히 엮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아이는 돌 즈음에 8층 집을 만나서 최근까지 줄곧 그 아파트 주변을 거닐었다. 놀이터에서, 근처 공원에서, 대로변에서. 아이 입장에서는 걷기 시작할 즈음이었고 자신의 발로 걸으며 주변을 탐색하던 자발적인 시기다. 36개월을 엄마와 함께 했던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와 함께 수없이 거닐었던 추억이 가득한 곳이 바로 8층 집이다. 게다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염원했던 누나가 다니던 어린이집에 당당히 입학을 하며 4살 형님 자신감을 뿜어대던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했다. 아이는 밝고 아무렇지 않게 보였지만 이사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지라 가족이 이동하니 덩달아 따라온 것이 된 모양새가 아닌가.......싶다. 무엇이 아이 마음에 남아 8층 집을 떠올리게 하는 것일까. 어린 아이는 좀 무딜거라 생각했던 내가 작아진다. 그리고 덩달아. 슬프다. 실은 아주 많이.

  이제야 직면하고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지점이 된다. 실은 나 역시 예전 집에서 우리가 만들었던 추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군인 가족으로서 처음 사는 군 아파트였고 그렇기에 처음으로 내 이름으로 사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가족으로 불리던 시작이기도 했다. 내 이름 석 자를 들어 살던 사람이, 나의 꿈을 위해 깨어있기를 갈망했던 사람이, 한순간에 누군가의 가족으로 불리며 사는 것이 적잖이 스트레스였다. 나의 하루를 온전히 경영하며 건강하게 누군가의 가족으로 불리웠다면 그저 아름다웠다는 단어로 즐거이 추억할 수 있겠지. 허나 나에게 8층집에서의 기억이란 나의 삶이 고스란히 누군가의 가족으로,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으로 내 하루를 만들어야 하는 나날들이기도 했다.

  싫은 정 미운 정 고운 정이 무섭다. 나로서 온전히 살지 못하는 하루는 군 아파트 산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그곳을 떠나와 새로운 곳에 살게 되면 그곳이 군 아파트일지언정 이제는 진정 나 자신으로 살리라 다짐에, 다짐에 다짐을 했다. 나답게 살지 못했다는 후회, 연민, 안타까움. 그것을 만회할 수 있는 것은 이사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신랑은 여유롭게 정리하면서 이사를 준비하고 싶어 했다. 허나 나는 나로서 살 수 있는 목표와 시간이 눈 앞에 있는데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날짜가 결정되자마자 이사를 서둘렀고 장마가 시작될 거라는 일기예보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라는 질문의 근본으로 들어가 보면 나는 나로서 존재하기를 열망했다. 해야 되는 책임과 나로서 살고 싶었던 바람이 한데 엮여 아프면서도 나름 교훈을 얻은, 첫사랑과 같은 감정, 교훈을 남긴 8층집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매일같이 신랑의 가족으로 조직에 출근해야 했던 나날들에 나로서 존재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겹쳐 그리도 원망스럽고 아련한 감정을 남긴 것이 아닐까. 스트레스를 피하고 싶어 도망치듯 이사 왔더니 이제와 관련된 감정에 대면하게 되고 관련된 감정들이 빠져나가며 공허함만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그 자리가 슬픈 것은 아닐까.

  , 정의내릴 수 없는 지난 2년여다. 허나 이것도 언젠가 신랑이 전역을 하게 되는 날이면 눈물나게 그리워질지도 모르는 시절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가가 지금 네가 앉은 자리가 꽃자리라고 했던 문구가 떠오른다. 슬프지만 괴롭고 괴로워서 즐거웠고 아름답다고 추억되는 것이 나에게는 신선하다. 내가 나로서 살지 못한다고 괴로운 만큼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도 많이 받았다. 실은 나름대로 인정받은 부분도 있었다. 그러니 첫사랑. 이 단어만큼 지난 2년을 정확히 표현해 주는 단어도 없다.

  자꾸 이사를 해야 한다는 아들 녀석과 함께 나의 마음에게도 시간을 주어야겠다. 급하게 밀어붙여 이제와 슬픈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야 하는 우리네 아닌가. 언제나 여기가 꽃자리라 믿으며 오늘 내가 과거를 생각하며 잘 살았다 못 살았다 추억하는 것처럼. 2년 뒤의 내가 이 지점을 봤을 때 후회가 없도록. 아픈 감정은 잘 다독이고 좋은 감정은 격려하며 즐겁게 순간을 살자고 나에게 한 번 더 손을 내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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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후

2018. 11. 22. 08:17 | Posted by Musicpin



이사 후

 

수요일 이사 후 처음 맞는 주말, 토요일 아침이다. 장마가 시작이라는 일기예보와 함께 이삿짐을 쌌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시작한 이사는 오후 1시쯤 시작되어 7시 즈음이 되어서야 마무리 되었다. 비는 시작할 때보다 더 세게 내렸다. 또 다시 이사다. 이번 이사가 어느 덧, 4번째. 군인 가족이라면 숙명이다.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는 이사업체 사람들이 짐 정리를 마치고 돌아간 후, 우리 가족만 남았다. 연결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사전 정보도 전혀 없는 곳에서의 우리. 밖은 깜깜하고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장대비가 되어 창밖에 방울진다. 이 안에서 우리만 있다는 생각에 적막하다. , 외롭기도 했던가. 익숙하지만 명확하지 않은 모호한 감정들이 안개처럼 스며든다. 다시, 또 다시. 새로운 곳에서, 다시 시작이다.

  일단은 몸져눕고 싶었다. 머리가 아팠고 몸은 무거웠다. 이 주 째 지속된 갈라진 목소리는 더더욱 허스키한 말로 나왔고 따끔했다. 아이들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와 의지로 몸을 움직였다. 밥을 먹여야 했고, 씻겨야 했고, 일단은 낯선 곳에서의 적응을 위해 엄마로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 했다. 정들었던 어린이집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보고 싶다며 첫째 딸아이는 눈물바람을 한다.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받아드려 보려고 몸부림치겠지만 엄마는 딸아이의 눈물바람을 보기가 괴롭다. 가슴 한구석에서 물 젖은 솜 마냥 그저 함께 먹먹하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의 이동. 그것은 일순간 모든 것이 정지되는 것 같은 리셋 버튼이 된다.

  군인 가족으로서의 이사가 자신의 책임인 양. 신랑은 부지런히 집 이곳저곳을 손본다. 바닥을 몇 번이나 닦고, 망가진 곳을 수리해가고, 필요한 것을 다시 챙겨보는 중이다. 부족한 것을 채워가고 애매한 것을 확실히 매듭짓고, 살기에 불편할 곳들을 불편하지 않게 한 번 더 만지는 손길이 섬세하다. 함께 동사무소에 가서 주소를 이전하고, 주로 다닐만한 동선을 함께 지나가고,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지역적 특색에 한 번 더 눈길을 주며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아이들의 어린이집과 유치원, 내년이면 다니게 될 학교까지 우리는 함께 방문해보며 상담을 하고 상의를 한다. .......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했더라면 얼마나 더 적막했을까.

  새로운 장소에 낯을 가리고, 익숙하지 않음에 어색해 하는 것이 어른답지 못한 것일까. 이사가 익숙해지는 순간이 오면 나는 더욱 성숙해진 어른이 되어 있을까. 아이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어른이면 적응이 한결 쉬워지는 순간일까. 아이들과 신랑덕분에 기운을 내고 적응을 해 보려 유연한 척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어색한 것은 사실이 되어 낯선 공기 내음을 풍긴다.

  딱히 꼬집어 어디가 아픈지 모르겠으나 마음이 시들었던 하루하루에 신랑과 함께 움직이니 그나마 움직일 힘이 난다. 다른 생각하지 못하게 부지런히 말을 건네는 아이들 덕에 정신을 잡아보려 노력한다. 가족의 힘이란 이런 것인가. 적응이란 게 배터리 충전하듯이 단번에 차오르면 좋겠지만 이번 지역에서는 얼마나, 또 어떻게 적응이 되어 가련지 막막하기만 하다. 이제껏 그랬듯 알게 모르게 스르르, 생소했던 것이 익숙해지고, 낯설었던 것이 당연해지는 그 순간이 되면 적응이 되어 있다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이 곳에서 지낼 앞으로 2년여의 시간은 어떻게 지나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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