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상자가 너무 재밌는데 난이도가 있어 쉽게 도전하지 못 하는 아들. 하루는 조르고 졸라 아빠에게 자동차를 부탁하고는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또 관찰한다.
그러다 두 개의 판과 기다란 지지대를 나사로 조이고 풀고 조이면서 비행기 비스꾸리한 물건을 만들었다. 아빠가 만들어준 자동차보다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더 맛있다며 우쭐한다.
“엄마, 이건 비행기야, 멋지지??” 성취감과 뿌듯함에 한껏 들뜬 아들에게 엄지 척. 세우며 “정말 그렇네~* 우리 아들이 만든 게 제일 멋지고 엄청 멋지고 최고 멋지다!!!!! 어쩜 우리 아들이 이렇게 잘 만들었지? 엄마 눈에는 진짜 네가 만든게 짱 멋져!!!!!!” 호응한다.
엄마의 엄지척을 두둑히 받은 아들은 눈빛이 더더욱 용감해지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며 기세등등이다. 스스로 해냈다는 자부심이 일렁인다. 척척박사를 꿈꾸는 아이에게 엄마의 응원이 자양분이 되도록 많이 응원해야지. 당분간 엄지 손가락 세울 일이 많을 듯 하다.
앞니가 빠진 지 고작 한 달 남짓. 옆에 있던 앞니도 제법 흔들리더니 한쪽 뿌리까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번에 빠질 앞니를 놓고 우리 부부는 속삭였다.
“자기, 만 원짜리 있어?”
“없는데, 오 만 원짜리?”
“잉? 너무 큰 돈이야.”
아이가 결심을 굳혔는지 대번에 아빠에게 이를 빼달라고 부탁했다. 이 흔들리는 게 너무 많이 신경 쓰인다면서. 이럴 때 보면 참 우리 딸, 강심장이다. 늘 이가 빠지면 tooth fairy가 밤사이 만원을 주고 갔기에 이번에도 우리 부부는 만 원짜리 지폐가 필요했다. 허나 저녁 8시가 넘어가는 시점에 밖을 나갔다 오기도 애매하고 만 원 이상의 지폐를 주기엔 금액이 너무 크다. 오, 이런. 미리 준비해 놓을 걸. 예상치 못하게 일찍 흔들린 앞니다.
실로 올무를 만들어 아래로 잡아당긴 순간. 이는 수월하게 빠졌다. 헌데 아이가 울면서도 tooth fairy가 다녀갈 수 있게 베개 아래에 두고 잔단다. 이를 어쩌나. 만 원 짜리 지폐가 없는 우리 부부는 속이 탔다. 그러다 문득. 남편이 tooth fairy도 주말엔 쉬느라 다녀가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주말엔 tooth fairy도 휴가 일정이 잡혀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딸아이의 말을 듣고 우리는 숙연해졌다.
“tooth fairy가 주고 간 돈을 많이 모아서 아빠 생일 때는 골프 공을, 엄마 생일에는 좋아하는 책을 선물할거야.”
오, 이런. 아이의 넓은 속마음에 우리 부부는 감동적이면서도 더욱 분주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tooth fairy가 다녀가야 한다. 아이가 보물인양 빠진 앞니를 베개 속에 넣고 잠든 후. 우리 부부는 혹시나 숨겨둔 비상금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각자 지갑과 가방과 호주머니 속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다 서랍 한구석에서 문화상품권 만 원짜리 3장을 발견했다. “유레카!!!!” 이보다 더 기쁜 순간이 어디 있을까? 과연 괜찮을까 의심도 했지만 이번 기회에 문화상품권이라는 게 있는 것도 알려주지, 뭐. 하면서 없는 것보단 낫지, 만족스러워했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처음 보는 문화상품권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거는 아빠가 넣어 놓은거야?” 물어보면서. 우리 부부는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 아마도 tooth fairy가……. 아마……. 음……. 이런 돈?도 있다고 소개시켜 주려고 한 거 아닐까? 이걸로 책을 사거나 음식을 사먹을 수도 있거든. 와~ 이것도 참신하다. tooth fairy가 센스 있네!!!!!!!”
날도 덥고 코로나19가 재확산 되어 외부활동 자제가 요청되는 요즘. 어린이집과 학교는 9월 11까지 휴원. 원격교육과 학습꾸러미로 대체. 나도 아이들도 뭘 하면 재밌을까 생각하다 어렸을 적 땅따먹기를 소환했다.
첫째는 친구들과 많이 해 봤다면서 손뼉 치며 좋아했고 누나바라기 둘째는 콩콩 뛰는 것에 신이 나는지 두 발로 모든 칸을 넘나든다. 처음에는 봐주면서 해야지 했는데 웬걸.
돌 두 개를 던져가면서 점수를 따불로 더해간 딸이 이겼다. 이럴수가. 엄마를 이긴 딸은 두 손이 아프지도 않은지 연신 박수치기다. 순하기만 한 딸내미인 줄 알았더니만 승부욕이 남다르다. 엄마를 이기려고 규칙을 조목조목 따지기까지. 재밌게 놀려고 시작한 놀이로 딸의 새로운 모습 발견이다. 우리가 더 친해졌다. 돈독함과 추억까지 덤이다.
엄마는 안 하던 뜀을 뛰어 자울자울 힘이 없는데 두 아이는 뛸 수록 생기가 돈다. 지쳐서 그만 하자 내뱉을 즈음. 아쉬운 아이가 등 뒤에 대고 한 마디 한다.
“내일 또 하자!!!!!!!!!” “다음다음 날도 또 하자!!!!!!!” “매일매일 꼭. 하자!!!!!!!!!!!!”
용기 있게 내딛은 다리가 페달을 굴리자 아이는 앞으로 나아갔다. 넘어질까 불안한 마음은 부모 뿐. 아이는 그냥 쑥. 앞으로 나간다. 좌우로 코너링도 돌고 크게 멀리 한 바퀴 달리는 것까지.
아이가 자랑스러웠다. 누나가 있어서인지 배우는 게 빠르다. 첫째 아이는 여덟살이 되어야 보조 바퀴를 떼 줬다. 혹여나 넘어질까 불안해서.
그런데 정말 부.모.만. 불안하다. 아이는 도전을 즐긴다. 새로운 목표점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한계를 지우는 건 어른일 뿐. 아이는 마지노선을 보지 않는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행동할 뿐. 부모라서 해 줄 수 있는 건 도전을 지켜보며 응원해주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이가 자란다. 자전거로 달릴 수 있을 만큼, 저만치 멀어져가는 거리만큼 아이는 분리되어 갈 거다.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하고. 성장은 축하할 일이고 자립은 응원할 일이다.
아이의 성장. 혼자서 두 바퀴 자전거를 타는 지금이야말로 축복의 샴페인을 터뜨려야 할 때이다.
하루 온종일 흔들리는 앞니에 신경이 쓰였던 딸아이. 침대에 눕기 전에 결심한 듯 아빠에게 빼 달라고 이야기한다. 엄마아빠가 빼자고 이야기하면 겁 나는데 자신이 결심하면 씩씩하게 용기가 난다면서.
남편은 손 끝에 실을 감아쥐고서 아이의 이빨에 한바퀴 감아 꿰었다. 생각보다 한번에 꿰지지 않아 반복하기를 서너번. 조바심이 늘어가는 아이를 내가 품에 꼭 안고 아빠가 마주보고 섰다. 단번에 낙아채듯 확 잡아채야 아이도 덜 아프다.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꽉 쥔 아이가 헉. 하고 반응하기도 전에 남편은 실을 낚아챘다. 방금 전까지 흐엉흐엉 흐물거리던 아이가 톡 떨어진 치아를 보고 갑자기 웃는다. 하하하하하하하.
덩달아 온 가족 하하호호 웃음꽃이 핀다. 용기를 내어준 딸아이가 대견하고 한 마음으로 누나를 응원하는 둘째 아이가 기특했다. 누나가 울지 않고 이를 빼니 엄지 척 치켜세운다. 사이좋은 남매에 부부는 덩달아 행복하다.
아이의 이 빠진 자리가 휑하니 바람소리를 낸다. 빠진 치아를 베개밑에 꼭 챙겨두면서 저번처럼 이빨 요정이 돈을 두고 가면 좋겠단다. 이번에도 이빨요정이 왔다갔을까?
tooth fairy 다녀가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아이는 만연한 미소를 띠며 돈 쥔 손을 팔랑댄다. “엄마, tooth fairy 이번에도 다녀갔나봐!!!”
둘째 아이의 개월 수가 어느 덧 22개월 차. 두 돌을 코앞에 두고 있다. 잠만 자던 까꿍이가 어느 순간 고개를 이기고 뒤집더니 앉아서 놀고, 서게 되고, 걸어 다니고, 뛰어다닌다. 이제 막 두 돌을 만나는 아이가 성장하는 것은 놀라운 과정이 아닐 수 없다.
20개월 즈음부터 유독 단어의 발달을 보였는데 그것은 서로가 교류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기초가 되어주었다. 물, 붕붕, 우유 등. 자신이 가지고 노는 것들을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각종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표현해 내기도 했다. 매일 같이 읽어주는 그림책을 펼쳐들고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표현해 내기도 하고 로봇트가 되어 변신 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새삼 많이 자랐다.
첫째 아이에게 가려 다 보지 못했을지언정, 더 세세히 기억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도 한다. 이 아이가 가진 놀라운 에너지가 나를 지치게 하기도 하지만 그만이 가진 갖은 재롱은 나를 웃게 한다. 이보다 더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함께 있는 시간이 멀지 않음을 느낀다. 이제 곧 일 년여 정도 더 있기로 마음먹는 차에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대기가 곧 이니 잘 하면 2018년 3월 달에 입소가 가능하겠다는 것이었다. 내년 3월이면 아이가 25, 26개월 차가 된다. 순간. 나의 자유와 하고 싶은 공부와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이 나를 두근거리게 했다. 이렇게 설레일 수가.
둘째 아이라면 그 누구보다 어린이집 적응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호기심 왕성한 활동성도 인정을 받았다. 누나가 다니는 덕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 예상도 했다. 헌데, 아이 인생에서 고작 3년의 시간을 내어주지 못해 빨리 떼어내는 것이라면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엄마의 품을 찾고 놀다가도 금세 엄마를 찾는 아이의 눈과 마음을 모른 체 할 수가 없다. 물론 처음엔 호기심에 엄마가 없어도 잘 다닐 것이라 생각한다. 또래도 있기에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가며 적응해 낼 것이라 생각한다. 허나 아직은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더 분리를 원하는 순간까지 함께 지내리라 결정해 본다.
아직은 엄마를 찾는다. 자신의 누울 자리를 내 품에서 얻는다. 욕심 같아서는 눈 딱 감고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으나 차마 그럴 수는 없다. 각종 육아서와 심리 이론서에 나와 있는 것을 아는 이상, 내 욕심만을 채울 수 없어 나의 자유를 잠시 유보하기로 했다.
해서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어린이집 원장님께 연락을 했다.
“어제 잠깐 들었던 정원이의 대기는 그 자리가 더 필요한 다음의 친구에게 넘기려고 해요. 아이에게 36개월의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저의 자유를 잠시 유보시키려고 합니다. 시간을 내어주는 엄마가 되기로 마음먹은 이상 어린이집처럼 다양한 자극은 되어주지 못할지언정 온전히 품어주기 위한 2018년이고자 희망해봅니다. 해서 상의 드리고 싶은 것은 대기를 다시 걸어 맨 뒷자리로 가도 되는지요? 저의 이상적인 계획은 내년 이맘때쯤, 혹은 2019년도 3월이기를 희망하는데 또 상황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르지요. 그렇지만 저의 계획에 가장 이상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해 보고 싶은 마음이랍니다. 저의 소망과 어린이집의 상황이 조율가능한지가 궁금합니다. 답변 천천히 주셔도 됩니다. 어린이집에서 또 뵈어요.”
이렇게 보내니 마음이 더 빨리 정리가 되었다. 그래, 알면서도 행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그리고 육아서를 처음부터 다시 잡자. 현실에서 핑계대지 말자. 쉽게 하려고 꾀부리지 말자.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허니 굼뜨지 않게끔 열심히 즐겁게 살자. 어쩌면 이것이 바로 가장 빠른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책과 함께 육아를 버무린 삶. 육아가 곧 경력이다. 나를 스쳐지나가는 그 어떤 것도 가벼이 여기지 말자. 나는 나로서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다양한 큰 스승에게 열심히 배우자. 내 하루를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채워 나가자. 성장하고 성숙해지자.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2017.12.12. 그 때 그 시절)